다음 날 아침, 우리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려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비의 요정을 어깨에 업고 다니는 듯,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부슬비가 따라붙었다. 우의를 입고 천천히 걸었지만, 곧 작은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전날 검색해 둔, 굳이 오늘 아니어도 되는 장소를 찾아보겠다며 골목을 돌고 또 돌다 보니, 어느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목적지는 찾았지만 꼭 지금 와야 했나 싶은 마음이 스쳤다. 비도 내리고, 시간도 애매하게 흐르고, 괜한 짜증이 서로의 표정에 묻어났다.
우리는 잠시 일정을 멈춰 다음 발걸음을 고민하다가, 정오가 지나서야 비도 잦아들고 마음을 정리한 뒤 길을 나섰다.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 골목을 걷는 동안, 숨겨진 틈 사이로 인카르나시온 광장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었다. 버섯처럼 솟아오른 곡선을 향해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세타스 데 세비야(Setas de Sevilla), 공식 명칭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은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대형 목조 구조물이다. 나뭇결이 드러난 지붕은 광장을 넓게 덮어, 비가 갠 뒤 흐릿한 햇살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스며든다.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 쉬거나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즐기고, 아래층 시장과 상점에서는 커피 향과 기타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가 뒤섞여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원래 이 자리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던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시장은 제 기능을 잃었고, 세비야시는 2000년대 초 국제 공모를 통해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독일 건축가 위르겐 미이어의 설계안이 선정되었고, 목재와 철골을 결합한 현재의 구조물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층마다 다른 매력을 지닌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의 안티콰리움(Antiquarium)에서는 기존 시장 철거 과정에서 발견된 로마·비시고트·이슬람 시대의 유적이 발굴 위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유리 보행로 위를 걸으며 당시 도시의 생활 흔적을 내려다볼 수 있다. 1층의 엔카르나시온 시장은 지역 주민과 여행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공간으로, 소규모 상점과 카페가 일상의 리듬을 만든다. 그 위의 광장과 전망대 층은 축제와 전시, 산책이 가능한 공공의 무대로, 세비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처럼 메트로폴 파라솔은 과거 유적, 지역 생활, 관광 동선이 하나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재래시장이 있던 구역을 다시 도시 활동의 중심으로 되살렸다. 전망 데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길을 잃고 짜증 내던 아침이 마치 다른 도시의 일처럼 멀어져 있었다.
세비야 여행 중 우리는 이곳을 두 번 찾았다.
광장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고, 멀리서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대로변 계단 아래서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맑게 갠 세비야 하늘 아래, 그의 목소리는 공기 속으로 가볍게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귀를 기울였고, 한 곡이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청년은 수줍게 미소 지었고, 울림은 광장을 하나의 악기처럼 채웠다. 우리도 그 소리에 이끌려 광장을 천천히 한 바퀴 더 걸었다.
파라솔 광장을 뒤로하고 우리는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차츰 세비야의 골목길에 익숙해지고 있던 우리는 스스럼없이 아무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플라멩코 의상이 걸린 가게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길을 걷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성당을 발견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대리석 아치 기둥과 황금빛 장식이 눈부시게 빛나는 교회였다.
골목길 산책을 마치고 도착한 스페인 광장.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그 틈으로 피리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은 반달 모양으로 펼쳐졌고, 중앙 분수는 햇살 아래 반짝였다.
마차의 바퀴소리와 말굽소리가 달가닥거리며 지나가고, 광장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플라멩코는 평범한 음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예술이었다.
애절한 목소리의 노래(칸테)가 공기를 울리고, 기타(토케)가 리듬을 세밀하게 이끄는 사이, 무용수의 손과 발, 몸짓(바일레)이 공간을 흔들었다.
각각의 박자가 햇살과 섞이며 우리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늦추게 했고, 우리는 음악과 춤에 이끌려 광장 안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광장 한쪽에서는 이미 플라멩코의 리듬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댄서가 몸을 흔들며 음악과 하나가 되었고, 드레스 자락은 바람을 가르며 펄럭였다. 발끝은 나무판 위에서 딱딱 소리를 내며 광장을 울렸다. 뒤편 연주자들은 팔마를 치며 리듬을 더했고, 기타와 노래, 손뼉이 공기를 진동시켰다.
잠시 후 파란 드레스의 댄서는 뒤로 물러나고, 빨간 드레스를 입은 댄서가 매혹적인 자태로 중앙으로 나왔다. 발굽 소리와 기타, 노래가 새로운 에너지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빨간 드레스 자락이 물결처럼 공간을 흔들며 광장을 가득 채워 나갔다. 춤과 음악, 발굽과 손뼉, 관객의 숨결까지 함께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그날 세비야에서 본 수많은 풍경 중, 이 장면이 오래 남은 건 여행의 리듬이 비로소 이 도시와 맞아떨어졌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우아한 반원형 공간 속에 스페인이 겪어온 역사와 욕망을 품고 있다.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이곳은 쇠퇴하던 제국이 라틴아메리카와의 관계를 다시 잇고자 했던 상징적 무대이자, 도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던 시도였다. 회랑의 세라믹 장식과 네 개의 다리는 무데하르 전통과 과거의 물길을 품으며, 광장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이 광장의 숨은 매력은 광장을 따라 놓인 타일 벤치들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스페인의 52개 지방을 담은 이 벤치들은 장식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각 지역의 역사와 기억이 타일 사이에 고요히 머물러 있다. 카스티야-라만차의 벤치에서는 마치 돈키호테가 다시 풍차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고, 안달루시아의 벤치에서는 알람브라의 빛과 플라멩코의 숨결이 은근히 배어 나온다.
두 개의 주가 하나로 표현된 카나리아 제도 벤치는 ‘비어 있다’는 소문을 낳았지만, 그 애매함마저 스페인의 복잡한 결을 자연스럽게 비춰준다.
스페인 광장은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와 여행자의 시선이 겹쳐지며,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장면을 써 내려가는 열린 책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