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 겨울 바다를 걷다.

웨일스 피시가드애서..

by 봄이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런던에 사는 딸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웨일스로 내려온다. 올해도 그렇게 맞이한 아침, 우리는 매년 이어오던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났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해가 완전히 오르지 않아, 공기가 차가웠다. 길은 조용했고, 간간이 켜진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남아 있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들판이 점점 넓게 펼쳐졌다.

그 길 끝, 웨일스 남서쪽의 작은 항구 마을 피시가드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물고기와 항구를 지키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마을은, 오래전부터 어업과 항구 일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지금도 언덕 위 요새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마을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항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을 시작했다.

배들의 정박지는 대부분 비어 있었고, 작은 어선 몇 척만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물 위에서 흔들렸다. 번호가 적힌 계류 자리마다 고인 물결이 반짝이고, 바람이 지나가며 항구를 더욱 고요하게 만들었다.


항구를 빠져나간 배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흔들리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바다는 늘 그렇게 사람과 배를 품었다가 보내고, 다시 맞이해 왔을 시간을 떠올렸다.

산책로를 걷던 중, 작은 집 벽에 걸린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1846년 폭풍 속에서 난파 위기에 놓인 선원들을 구한, 마가렛과 마사 르웰린 자매의 이야기였다. 차가운 파도와 흰 포말 속에서도 두 여인은 물길로 나아가 선원들을 하나씩 육지로 이끌었다.

자매는 이 용기 있는 행동으로 왕립 인간애 협회의 황동 메달과 보상금을 받았다. 정박지는 비어 있었지만, 벽에 남겨진 기록은 바다와 사람 사이의 오래된 연결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항구 끝에는 바다로 길게 뻗은 방파제가 서 있었다.

우리는 그 위에 서서 한참 동안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눈앞의 피시가드 항구는, 내륙 쪽으로 깊게 들어온 만 끝자락에 자리 잡아 높은 절벽들이 마을과 항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정적과 절벽의 웅장함, 마을의 소박함과 바다의 광활함이 한 화면 안에서 고요하게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방파제를 뒤로하고, 우리는 마을 뒤 해안 코스트 패스로 이어지는 언덕으로 향했다.

작은 오솔길 끝에서 피시가드 요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요새는 옛날 마을을 지키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바다를 향해 트인 시야 덕분에 외부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곳이다.

1797년, 프랑스 군대가 영국 남서부를 침략하려고 상륙했을 때도 바다는 지금처럼 차분했을까? 당시 프랑스는 혁명 이후 유럽 전역에서 영국과 대립하며, 영국 본토를 흔들 전략으로 웨일스 해안을 노리고 있었다.


런던에서 멀고 방어가 약하다고 여겨졌던 이 작은 항구는 그들에게 쉽게 점령될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러나 실제로 마을을 지켜낸 것은 군대가 아니라 주민들의 기지와 용기였다. 붉은 숄을 두른 여인들이 언덕 위에 줄지어 서자, 프랑스 군은 대군이 매복해 있다고 착각했다. 총보다 용기가 앞섰고, 싸움 대신 지혜가 승리했다.


그 장면을 떠올리다 보니,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이름 없는 백성들의 힘과 지혜로 침략을 막아냈던 순간들이 겹쳐 떠올랐다. 지금은 바람만 스치는 언덕이지만, 그 자리에 서 있으니 당시의 긴장감이 잠시 전해졌다.

요새에서 내려다본 Fishguard Bay는 한눈에 담기에 아까울 만큼 넓고 잔잔했다.

절벽 아래 부서지는 파도, 언덕 끝의 노란 가시금작화, 만 안쪽 항구까지 이어진 풍경 속에서, 아일랜드로 향하는 여객선 한 척이 천천히 바닷길을 열고 있었다. 겨울 바다의 광활함과 함께, 언젠가 아일랜드의 어느 항구에 서고 싶다는 조용한 설렘이 마음을 스쳤다.


요새를 나와 해안길로 들어섰다.

잠시 길은 순하게 이어지는 듯했지만, 곧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거칠게 방향을 바꿨다. 차갑고 날카로운 겨울 바닷바람이 뺨과 이마를 휘감았다.

내딛는 길은 질퍽한 진흙과 곳곳의 작은 구덩이로 흔들렸고, 한 발 한 발 균형을 맞추며 나아가야 했다.

조금 더 걷자 길은 해안 절벽과 작은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겨울 풀밭은 여전히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었고, 길가에는 붉게 마른 고사리잎이 눈길을 끌었다.
등 뒤로는 피시가드 만과 요새가 고요히 자리 잡았고, 내륙 쪽으로는 Preseli 산지의 아련한 능선이 겹쳐 있었다.
바다와 육지가 맞닿는 곳마다 잔잔한 파도와 겨울 풀밭, 바람에 날리는 마른 잎과 풀들이 어우러져 눈앞에 펼쳐졌다.


해안 절벽과 작은 언덕을 지나 조금 더 걷자, 발밑의 울퉁불퉁한 자갈과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게 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바다로 옮겨지고, 포트에서 절벽과 겨울 초원을 지나온 모든 풍경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조금 더 걸으니, 바람에 부서지는 파도가 해안가를 흔드는 가운데 피시가드 베이 리조트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 여정의 마지막 지점이었다.

그 너머로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다.


우리는 그 끝에서 잠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늘 걸음 하나하나가 바다와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고,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차가운 바다를 느끼며 숨을 고르고 서 있었다.
딸도 바쁜 일상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웨일스의 겨울바람과 광활한 자연 속에서, 이 순간이 그녀에게 작은 선물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바다와 풀밭, 붉게 마른 고사리잎 사이에서, 그녀는 잠시 위안과 평온을 찾으며 조용한 행복을 느끼는 듯했다.


https://youtu.be/d4bt7rmgLAo

이 영상은 여름 “The Last Invasion Walking Tour in Fishguard라는 제목의 YouTube 동영상이에요.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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