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거의 매일같이 내리지만, 눈을 보는 날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그래서 이곳에서 겨울은 ‘춥다’기보다는 ‘젖어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런 웨일스에 어제와 오늘, 이틀 연속 눈이 내렸다.
요 며칠 사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정말 춥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익숙하지 않은 추위였다. 비에 젖는 대신 모든 것이 조용히 하얗게 덮여 있었다. 눈은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풍경과 공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며칠 전 뒷뜰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식물의 맹아들. 급한 마음에 다시 뒷뜰로 나가 보았다.
아직 겨울 한가운데인데도 성급한 식물들은 이미 맹아를 틔우고 있었다. 파랗고 여린 잎사귀들이 땅 위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온화한 날씨에 속아 봄이 온 줄 알았을 그 작은 생명들이, 이 갑작스러운 추위와 눈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눈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여린 잎들은 여전히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대비할 틈도 없이 찾아온 겨울의 변덕 앞에서,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작은 잎들이 얼어 죽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였다. 이번 눈은 유난히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이틀간의 눈이 모든 것을 얼려버리지는 않기를 바란다. 눈이 녹고 나면, 여린 잎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햇빛을 향해 자라나기를 조용히 기다려 본다. 웨일스의 겨울이 다시 비의 계절로 돌아가듯, 이 작은 생명들에게도 무사한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