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 9일 세비아 5일, - 세비야 마지막 시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그동안 놓친 곳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며 식사를 했다.
며칠 전 시간에 쫓겨 들르지 못했던 세비야 미술관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지만, 남편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어제 다녀온 운하에서 더 많은 햇살을 받고 싶어 했고, 강이나 바다처럼 열린 풍경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 마지막 날, 황금의 탑 아래서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남편을 따라, 나는 기꺼이(?) 그 길로 향했다. 남편이 늘 챙겨 다니는 미니 스피커를 가방에 넣고, 우리는 트램을 타고 과달키비르 강가로 향했다.
⇲. 11월인데도 강가에는 꽃들이 화려한 색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움직이는 동선에 음악이 없다면 그의 일상은 힘들다. 재즈, 팝, 샹송, 보사노바, 클래식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커피를 내릴 때도 음악이 필요하고, 요리를 할 때도 먼저 선곡을 마친 뒤 턴테이블을 올려야 비로소 주방에 들어선다.
반대로 나는 몇 개의 익숙한 장르를 제외하고는 분위기와 장소가 맞아야 음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종종 부딪히곤 한다. 그는 집안이 들썩이게 음량을 키우고, 5.1 채널 이상으로 틀어야 직성이 풀린다.
음악의 흐름을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놓지 못하는 우리 사이에는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과달키비르 강은 도심을 가로지르며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운하와 강이 만나는 지점, 강둑에 앉아 길목에서 사들고 온 짭조름한 바게트를 뜯어먹고 있었다. 강기슭에 앉아 있던 오리 두 마리가 부리를 흔들며 우리 쪽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오리들의 움직임에 맞춰 수면 아래가 분주해졌다.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검은 등들이 수면 가까이 겹겹이 드러났다. 물은 잔잔했지만 그 안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강은 그렇게 도시를 오래도록 먹이고 숨 쉬게 해온 살아 있는 몸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황금의 탑은 여전히 강과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편은 그늘이 살짝 드리운 자리로 자리를 옮기자며 미니 스피커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낮은음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햇살은 여전히 강 위에 부서지고, 음악은 물 위에 얹히듯 천천히 퍼졌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햇볕을 받았다.
강물은 제 갈 길을 가고, 음악은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갔다. 서로 다른 취향과 속도도 이 순간만큼은 나란히 흐르는 듯했다.
강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목적지도 남편의 선택, 스페인 광장이었다. 강을 떠나 구시가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과달키비르 강에서 갈라져 나온 옛 물길이 도시 안쪽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강이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면, 운하는 도시를 끌어안는다.
그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물의 리듬은 어느새 돌과 건물, 사람들의 발걸음 속으로 옮겨가 있었고, 우리는 그 끝에서 스페인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광장에 들어서자 햇살이 여전히 밝게 내리쬐고, 사람들의 소리와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남편은 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버스킹 피아노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올랐고, 나는 광장에서 공연 중인 플라멩코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에서 운하로 물길이 갈라지듯, 우리는 잠시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광장 한쪽 플라멩코 무대에는 며칠 전과 전혀 다른 구성의 댄서들이 차례로 올랐다.
젊고 매혹적인 여인의 힘찬 춤사위가 눈길을 끌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 시선을 붙잡은 것은 할머니 댄서였다. 다른 이들보다 한두 템포 느렸지만, 그녀의 춤에는 숙성된 깊이가 깃들어 있었다. 서두르지 않는 동작 하나하나에 세월의 풍경이 고여 있는 듯했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스카프가 들려 있었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울리기보다는, 스카프와 몸을 따라 흐르는 사뿐사뿐한 움직임이 공간을 채웠다. 더 이상 격렬한 리듬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몸처럼, 팔과 시선, 그리고 스카프가 리듬을 만들어 냈다. 그 움직임은 마치 강의 본류와 운하가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도 결국 같은 물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는 듯했다.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스카프를 따라 흐르는 선을 그리며 몸을 부드럽게 돌렸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머물게 하는 그 동작은, 시간을 잠시 멈추고 모든 순간을 느끼게 하는 듯했다.
그녀의 춤에는 기술 이상의 깊이와 숨결이 흐르고 있었다.
사뿐사뿐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삶과 경험이 자연스레 스며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강과 음악, 햇살 속에서 이어진 리듬이 그녀의 춤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느린 움직임 속 힘과 균형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강 위에서 음악을 듣던 그 여유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강은 바다로 향하고, 운하는 도시 안으로 스며든다.
그 갈림길에서 세비야의 오후 햇살과 광장의 풍경, 강과 운하가 만들어낸 도시의 리듬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오일 동안의 세비야 여행은 그렇게 다채로운 시간 속에서 흘러갔다. 트리아나 지역의 좁은 골목을 걷고, 강가를 따라 느릿하게 걸으며, 알카사르의 화려한 궁전과 대성당의 웅장함, 신시가지의 질서 정연한 거리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장을 보러 나갔다 길을 잃었던 모험, 버스를 잘못 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들어갔던 우연까지, 모든 순간이 자연스럽게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루 종일 이어진 음악과 물길, 춤과 햇살의 기억이 마음속에 잔잔히 남았다. 이 모든 경험은 세비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또 다른 여정을 위해 콜도바로 떠난다.
세비야에서 느낀 시간과 기억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길 위로 나설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