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órdoba,시간이 재사용 되는 도시

이 도시는 시간을 허물지 않는다.

by 봄이

로마교에 기대어 버스킹에 귀 기울이며 신혼부부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메스키타 (Mezquita-Catedral de Córdoba)

예약 시간이 떠올랐다. 급히 다시 로마교를 건너 구시가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주변의 모든 공간이 열린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길 양옆 오래된 건축물들이 두꺼운 돌벽과 높은 담장, 갈라지고 바랜 회벽 위에 내려앉은 햇살 속에서 조용히 지나온 시간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마치 과거의 전시를 관람하듯 하나하나를 천천히 지나쳤다. 발걸음이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하며 길 위의 시간이 내 호흡과 함께 맞춰졌다.


골목을 걷는 동안 메스키타는 늘 옆에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출입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깥의 햇살과 돌벽이 만들어낸 고요함을 지나, 역사와 예술, 종교와 문화가 한데 스며든 살아 있는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메스키타 내부로 들어서면 붉고 흰 아치가 반복되는 기둥 숲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끝없이 이어지는 회랑과 안뜰이 공간을 나눈다. 10세기와 11세기에 걸친 확장 속에서 더해진 아치와 기둥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감각을 품고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과거의 건축가와 장인들의 숨결이 겹쳐진다.

그러다 한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치 아래에서, 기둥들의 색이 같지 않다는 사소한 어긋남이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희고, 붉고, 회색을 띠는 돌기둥들은 규칙적으로 서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균일하지 않았다.

이 기둥들 중 다수는 이곳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의 신전과 목욕장, 서고트 교회에서 이미 한 시대를 건너온 존재들이었다. 이슬람 건축가는 새 돌로 모든 것을 덮는 대신, 오래된 돌들을 불러와 다시 세웠다. 서로 다른 시대의 무게를 그대로 안은 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둥 사이를 걸으며 나는 건축을 보고 있다기보다, 시간이 겹쳐진 틈을 지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메스키타는 말하지 않아도, 색이 다른 돌들은 분명히 속삭이고 있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오늘까지 이렇게 남아 있다고. 나는 그 속에서 한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기독교 왕국 시기에 더해진 성당은 이슬람 사원과 한 건물 안에 공존하며, 서로 다른 신앙과 시대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화려한 제단과 세밀한 목조 장식, 모자이크가 공간 깊숙이 자리한다. 바닥과 벽, 천장의 문양 하나하나가 시대를 건너온 장인 정신을 전하고 있었다.

전시 공간에는 모스크 장식 조각과 중세 기독교 성물이 나란히 놓여 있다.

돌과 기둥에 깃든 세월의 흔적과 함께, 이 유물들은 과거의 신앙과 예술, 그리고 이 도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증언한다.


메스키타 관람을 마친 우리는 근처 알카사르로 향했다.

이곳은 고대 로마 시대 총독의 거처로 시작해, 알안달루스의 권력 중심을 거친 뒤, 기독교 재정복 이후 가톨릭 왕들의 요새이자 궁정으로 다시 태어난 장소다. 높은 탑과 견고한 돌벽은 오랜 시간을 견뎌온 건물의 무게를 그대로 전한다.

알카사르의 정원을 걷다 보면 공간의 성격이 서서히 달라진다.

궁전 앞에서는 질서와 위엄이 느껴지고, 길게 이어진 수로를 따라서는 물과 빛이 시선을 이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배치는 느슨해지고, 자연 속에서 잠시 사색할 여유가 생긴다.

정원 한쪽에는 콜럼버스와 페르난도 2세, 이사벨 1세의 동상이 서 있다.

지도와 문서를 든 콜럼버스와 그를 내려다보는 두 왕의 시선은,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붙잡아 둔 듯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곳 알카사르에서 신항로 개척 계획이 처음 논의되던 장면이, 정원의 고요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알카사르 정원 한쪽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남편은 스페인의 대항해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논의되었을 선택들, 바다로 향하던 배들, 그리고 아직 이름조차 없던 세계에 대해...

세계사에 유난히 해박한 그는, 정원의 고요와는 달리 점점 말이 많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도시에서는 건물과 돌뿐 아니라, 사람의 말과 기억마저도 이렇게 겹쳐 쌓여 흘러가는구나...


알카사르를 빠져나와 메스키타 방향으로 다시 걷자, 옛 성벽 안에 철골 구조의 주차타워가 들어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친 돌벽과 금속 골조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유적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 태도에서, 나는 코르도바가 시간을 대하는 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 그 위를 걷는 내 발걸음도 겹쳐지는 듯했다.

주차장 앞 광장에는 코르도바의 시인 이븐 자이둔과 공주 시인 왈라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이들의 사랑은 시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광장에 세워진 조각상은 손끝이 닿을 듯 말 듯한 두 사람의 거리로 그 여운을 전한다.

광장 한쪽에는 칼리프 시대의 이슬람 목욕탕, 칼리팔 목욕탕(Caliphal Baths)이 남아 있다. 이곳은 몸을 씻는 장소이자 사람들이 쉬고 이야기를 나누던 공공의 공간이었다. 따뜻한 방, 뜨거운 방, 시원한 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와 바닥 아래에서 공기와 물을 데우는 난방 방식은 로마 목욕 문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곳 안뜰 말굽 아치 아래 기둥들도 메스키타 처럼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목욕탕 길목을 따라 조금 더 들어서면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이어진다.

우리는 이곳에서부터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기 시작했다. 돌문 사이로 조용한 중정이 나타나고, 햇살이 아치형 갤러리와 타일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어느 순간에는 작은 광장이나 분수, 꽃으로 장식된 골목이 나타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다시 길은 다른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이 골목의 시작점에는 로즈메리 거리(Calle Romero)와 유대인 구역의 중심 골목, 그리고 꽃의 길(Calleja de las Flores)이 있다. 흰 벽과 작은 발코니, 돌바닥 사이로 이어진 상점과 카페들에는 중세 아랍 시장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수백 년 전 유대인 공동체의 삶과 발걸음이 아직도 벽과 돌바닥에 스며 있는 듯하다.


건물 사이 작은 아치를 지나 골목을 따라 걷자, 어느새 망아지 광장(Plaza del Potro)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말과 노새가 오가던 장터이자 상인들이 모여들던 교류의 중심지였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분수 위 망아지상은 광장의 이름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세월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도 등장할 만큼, 이곳은 코르도바 일상과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야기들이 쌓여 오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광장과 이어진 골목에는 오늘날 El Zoco 공예 시장이 자리한다.

말굽형 아치가 줄지어 이어진 두 층의 갤러리가 건물을 감싸고, 아치 아래에는 작은 상점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순백의 벽 위로 코발트빛 화분들이 촘촘히 걸려 있어, 코르도바 골목 특유의 선명한 대비가 펼쳐진다.


작은 안뜰에는 식물과 오래된 토분, 작은 분수가 어우러져 고요하면서도 정돈된 아름다움을 만든다. 갤러리와 아치 기둥이 감싸는 이 공간에는 중세 이후 이어져 온 코르도바 전통 건축의 여유가 남아 있다.


시장 안에서는 전통 공예품이 오가고, 장인들은 각자의 작업을 이어간다. 햇살과 푸른 화분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과 웃음이 흐를 때, 옛 장터의 에너지와 오늘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금은 문화 공간과 미술관이 더해져 현대적인 분위기를 띠지만, 바닥의 불규칙한 포석과 담장 사이로 드러나는 돌벽의 질감은 여전히 과거 장터의 숨결을 전한다.

우리는 다시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나의 골목이 끝나고, 숨을 고르듯 다른 골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메스키타는 사전예약이 필수는 아니지만, 성수기나 관광객이 많은 시간대에는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려고 줄을 서야 할 수 있고, 매진될 위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지정해 온라인으로 예약하는 게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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