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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Feb 20. 2024

My Little Prince

법정스님의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작년 연말, 딸아이와 연말연시 휴가를 웨일스에서 보내며 오랫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저녁, 식탁에서 딸아이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책 있어요? 누군가에게 꼭 읽어봐라 추천해 주고 싶은 책요."

"응, 난 '어린 왕자', 어린 왕자가 제일 좋아. 아마 어린 왕자는 내가 죽을 때까지 읽을 거 같은데?,  너도 살면서 지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너에게 영적인 휴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 곁에 두고 읽는 책이 '어린 왕자'라면 좋겠다. 응? "

미주알고주알 딸내미랑 어린 왕자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딸내미가 런던으로 돌아가던 날, 내게 '영문판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를 한 권 안겨줬다.

"어머나, 이런 책을 입체북이라고 하니?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예쁜 책이 있다고? "

책을 받아안 행복해 눈물이 찔끔거리며 올라왔다.

딸내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어린 왕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던 순간이 어느 해였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땐 내가 아직 여물어지지 않던 시기였으니까(지금도 그때나 큰 변화는 없는듯 하지만), 그랬기에 어린 왕자를 읽었어도 별 느낌 없이 읽었을 테고, 지금처럼 애정 어린 시선 또한 없었다. 그 후 이십 대 중후반 때쯤이었을까? 지금도 발행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샘터'라는 월간 잡지가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좋아하는 글(소설이나, 시, 산문 등)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펼쳐 읽기 좋은 문학잡지였다. (기억 또한 헛갈리지만) 분명 샘터에 법정스님의 '무소유' 연재 됐던 거 같다.


어느 날 스님연재글 중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나는 한순간 뇌정지가온 듯 한 경험을 했다. 책을 읽다가 덥고, 다시 읽다 덥고를 반복하며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난 직장생활도, 첫사랑과의 연애도 많이 힘든 시기였다. 스님의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시기의 내게 보내주신 편지 같았다. 어린 왕자에게 보낸 시점과 내 시점의 간격은 너무나도 다르고 컸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그 샘터 속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많은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 스님은 내게서 잊힌 '어린 왕자'를 불러내주셨고, 그 후 어린 왕자는 내 삶의 일부처럼 나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 왕자'는 많은 이들이 한 번은 읽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때 그 첫 감정을 들춰내 다시 그 시점의 나로 돌아가고픈 마음에, 내가 존경했던 스님의 글을 되새김질하는 마음으로 딸내미가 준 '어린 왕자' 속, 예쁜 그림과  법정스님의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살짝 콜라보(collaboration)해본다.



입체그림이 너무 정교해 어린 왕자가 책 속에서 뛰어놀고 있는 듯하다,

어린 왕자!

지금 밖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 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네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니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네 작은 별에서는, 네 작은 의자를 조금만 옮기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테지, 그래서 너는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석양을 볼 수 있을 테고, "어느 날 해가 지는걸 마흔네 번이나 봤어!" 그리고 조금 후에 너는 덧붙였지.  "있잖아... 너무 슬픈 때는 누구라도 해 지는 석양이 좋아져......" "마흔네 번 그걸 보던 날 그러니까 너는 너무 슬펐던 거니?" 하지만 어린 왕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린 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는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하여도 네 세계를 넘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써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해 전, 그러니까 1965년 5월, 너와 마주친 것은 하나의 해후였다.

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다.

너를 통해서 나 자신과 마주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가난한 서가에는 너의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메마른 나의 가지에 푸른 수액을 돌게 했다.

솔바람 소리처럼 무심한 세계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재임을 투명하게 깨우쳐 주었다.

더러는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를 가울 인다.

방울처럼 울려올 네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혼자서 웃음을 머금는다,

이런 나를 곁에서 이상히 여긴다면, 네가 가르쳐준 대로 나는 이렇게 말하리다,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어린 왕자!

너의 아저씨(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동무의 목소리는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느냐?"

이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야 그 동무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라고 말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내질 못한다."1억 원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하고 감탄한다."


지금 우리 둘레에서는 숫자 놀음이 한창이다. 두 차례 선거를 치르고 나더니 물가가 뛰어오르고, 수출고가 예상보다 쳐지고, 국민소득이 어떻다는 등, 잘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숫자의 단위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스리는 사람들은 숫자에 최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숫자가 늘어나면 으스대고, 줄어들면 마구 화를 낸다. 자기 목숨의 심지가 얼마쯤 남아있는지는 무관심이면서,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시적인 숫자의 놀음으로 인해서 불가시적인 인간의 영역이 날로 위축되고 메말라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똑같은 물을 마시는데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든다는 비유가 있지만, 숫자를 다루는 그 당사자의 인간적인 바탕이 문제다. 그런데 흔히 내로라하는 어른들은 인간의 대지를 떠나 둥둥 겉돌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구나.


어린 왕자!

너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버섯'이라고 했었지?

"그는 꽃향기를 맡아본 일도 없고 별을 바라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어, 더하기 빼기 밖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그러면서도 온종일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고 뇌고만 있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그래, 네가 여우한테서 얻어 들은 비밀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한 모서리에 불과해. 보다 크고 넓은 것은 마음으로 느껴야지. 그런데 어른들은 어디 그래? 눈앞에 나타나야만 보인다고 하거든. 정말 눈 뜬 장님들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 슬기가 현대인에겐 아쉽다는 말이다.


어린 왕자!

너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꽃인 줄 알았다가, 그 꽃과 같은 장미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풀밭에 엎드려 울었었지? 그때에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어. 그건 너무 잊힌 말이라고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길들이기 전에는 서로가 아직은 몇 천 몇만의 흔해 빠진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여  아쉽거나 그립지도 않지만, 일단 길을 들이게 되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거야.

"네가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 하고도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다.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여우와는 아무 상관없는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가 금빛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황금빛이 감도는 밀을 보면 그리워지고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의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나', '너'사이에 '와'가 게재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다시 네 동무인 여우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되니까. 하지만 친구를 팔아 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날 길들여."


길들인다는 뜻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 너는 네가 그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임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 천 수 만의 장미꽃을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 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 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까.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은 점잖게 있는 것까지라도 다 들어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그러면서 자기를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라고 했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사람들은 특급 열차를 잡아타지만, 무얼 찾아가는지를 몰라."

그렇다.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밀리고 돈에 추격당하면서 정신없이 산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피로 회복제를 마셔 가며 그저 바쁘게만 뛰어다니려고 한다. 전혀 길들일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한 정원에 몇 천 구루의 꽃을 가꾸면서도 자기네들이 찾는 걸 거기서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단 한송이의 꽃이나 한 모금의 물에서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인데.


너는 또 이렇게 말했지.

"그저 아이들만이 자기네들이 찾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 아이들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 하나 때문에도 시간을 허비하고, 그래서 그 인형이 아주 중요한 것이 돼. 그러니까 누가 그걸 뺏으면 우는 거야......, "


어린 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을 묵은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생야일편부운열(생야일편부운열), 사야일편부운멸(사야일편부운멸), 삶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더라.


그렇다. 이 우주의 근원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죽음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니까. 어린 왕자, 너의 실체는 그 묵은 허물 같은 것이 아닐 거야. 그건 낡은 옷이니까. 옷이 낡으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우리들의 육신도 그럴 거다. 그리고 네가 살던 별나라로 돌아가려면 사실 그 몸뚱이를 가지고 가기에는 거추장스러울 거다.


"그건 내버린 묵은 허물 같은 거야. 묵은 허물, 그건 슬프지 않아. 이봐 아저씨, 그건 아득할 거야. 나도 별들을 쳐다볼래. 모든 별들은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 거야. 모든 별들이 내게 물을 마시게 해 줄 거야......, "


어린 왕자!

이제는 너를 길들인 후 내 둘레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오로 내게 소개해준 벗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다. 너를 대할 때마다 거듭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벗은 나에게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을 만나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 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적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다 더러 지묵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가까운 친지들에게 <어린 왕자>를 아마 서른 권도 넘게 사 주었을 것이다. 너를 일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이내 신뢰감과 친화력을 느끼게 된다. 설사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내 벗이 될 수 있어. 내가 아는 프랑스 신부 한 사람과 뉴질랜드 노처녀 하나는 너로 인해서 가까워진 외국인이다.


너를 읽고도 별 감흥이 없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나와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어떤 사람이 나와 친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너를 읽고 난 그 반응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사람의 폭을 재는 한 개의 자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리고 네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누워서 들어. 그래야 네 목소리를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야.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 네 목소리는 들을수록 새롭기만 해. 그건 영혼의 모음이야.

아, 이도록 네가 나를 흔들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네 영혼이 너무도 아름답고 착하고 조금은 슬피기 때문일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물이 고여 있어서 그렇듯이.

네 소중한 장미와 고삐가 없는 양에게 안부를 전해 다오.

너는 항시 나와 함께 있다.


- 법정 님 '영혼의 모음'에서 -


작년봄,

남프랑스 툴루즈 생텍쥐페리 공원에서 만난 어린 왕자와 앙트안 드 생텍쥐페리

딸아이와 일부러 찾아간 생텍쥐페리 공원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던 순간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진첩을 뒤졌지만, 남은 사진은 이 두장 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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