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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Feb 26. 2024

영국 길냥이 이야기 1

나는 길냥이 일까? 개냥이 일까?  집냥이 일까?

나는 길냥이 일까? 집냥이 일까?

나는 늘 이쯤에서  저들을 살펴야 한다. 그러다 그가 날 부르면 잽싸게 내려가 줘야 한다.
저들이 날 부르는 건  밥을 준비하니 내려오라는 신호다.

매일 아침,

나는 이 구역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 있어야 한다.

일찍 일어나 저들을 살피고, 저들의 눈에 띄어야 첫끼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가끔 저들 중 덩치 크고 머리털이 짧은 인간이 그들의 언어로 나를 부른다.

"호동아~~,    양아치~~~~~"

한참 후에야 위 두 가지 소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고, 내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하나는 내 털색깔을 비유해 지어진 거고, 다른 하나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다.

'양아치 라니... 인간의 언어란......'

처음 몇 번은 귀찮아 못 들은 척하고 자는 척했다가

그들이 한순간 이 영역에서 사라진 걸 알고 깊은 탄식을 했다.

'아니, 내가 내려오지 않으면 그냥 밥을 부어 놓던지...'

사실 그건 안될 이야기다.

이곳에는 까마귀, 까치, 갈매기까지 날아와 시시때때로 내 밥그릇을 넘보지 않던가?

난 내 밥그릇을 탐하는 그들에게 몇 번 대항했지만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그 갈매기 놈이 부리로 내 정수리를 콕콕 찍었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놈이 얼마나 날카로운 부리를 가졌는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그 후 나는 그놈들이 몰려오면 슬그머니 이렇게 새집으로 몸을 숨긴다.

어쨌든,

갈매기나 까마귀들은 나처럼 깔끔하게 밥을 먹지 못한다.

사료는 늘 밥그릇 밖으로 여기저기 튕겨나가 있고,

밥그릇 주변에 똥을 싸대질 않나,  

심지어 내 밥그릇이 똥으로 뒤범벅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인간들이 싫어할 수밖에...,

긴 머리털 인간이 갈매기 똥으로 얼룩진 내 밥그릇을 씻으며 툴툴거리는걸 몇 번 봤었다.

그땐 내가 똥을 싼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짧은 머리털 인간은 새들이 내 밥그릇 주변에 내려앉으면 그들의 문을 한번 열어젖힌다.

그러면 그놈들은 화들짝 놀라 멀리 날아가 버린다.

'겁쟁이 놈들, 문 여는 소리가 뭐가 무섭다고... 난 그 소리만 기다리고 사는데...'

나는 허브 뒤세서 가끔 저들의 동태를 살핀다.

늘 나만 바라보고 사는 저들이 아니기에,

그들이 이 영역에 있을 땐 절대 게으름을 피우거나 딴짓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태생이 길냥이(?)이기에, 종일 이 집 뒷가든에 앉아 저들만을 관찰하고 산다는건 정말 못할짓이다.

태어나기를 덤불 속에서 나서 그런지, 이 집 가든보다 덤불 속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난 가끔 이 집 뒤뜰과 이어진  뒷산에 있는 나만의 덤블 속에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거나,

종일 가든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라기 하며 끼니 기다리는 게 지루해질 때면, 잠깐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내 영역을 탐내는 놈들에게 나의 윤기 나는 털과 금방이라도 땅에 끌릴 거 같은 두툼한 배를 자랑하고파 내 영역을 벗어날 때가 있다. 또 내 영역의 깔끔한 관리를 위해 큰 볼일은 꼭 밖에서 보는지라  잠깐씩 뒷일을 보러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꼭 이런 사달이 일어난다.

참자, 잠자, 내려갈까 말까? 내려가면 난 또 미움 받지...암....참자....참자...

'저 봐라~ 저 얼룩이 저놈이 감히 내 밥그릇에다 나도 가끔 얻어먹는 참치를 먹고 있지 않는가?'

'나에겐 아주 가끔 주는 참치를 저놈이 오면 늘 저렇게 아낌없이 퍼 준다는 거다.'

'저놈을 내가 진즉 아작을 내서 이곳에 발도 못 들이게 했어야 했는데...'

한 번은 저놈이 내 영역에 들어와 내 밥그릇을 탐하기에 날카로운 내 발톱으로 놈의 얼굴을 휘갈겨 버렸다.

그때 저놈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해 싸움이 길어졌는데, 우리의 싸우는(아니다. 얼룩이 놈의 앙칼진 소리 때문이다.) 소리에 긴 머리가 쫓아 나와 막대기로 심기불편해져 강직된 내 꼬리를 탁탁 내리치는 거였다.

아, 그때의 그 기분이란...,

난 적어도 긴 머리는 내 편인 줄 알았다.

내게만 막대기를 휘두르며 나를 뒤로 물러서게 하는 거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나긴 했는데, 긴 머리가 얼룩이 그놈의 상처 난 코를 어루만지며 날 무섭게 째려보는 거였다. 그때 난 느꼈다. 긴 머리가 아직도 저 얼룩이 놈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 후 긴 머리는 한동안 내게 밥 주는 걸 멈췄고, 짧은 머리에게 얻어먹어야 했다.

긴 머리는 한동안 날 만지는 것도 멈춰버렸다.

그녀가 부드럽게 내 머리털을 쓸어내릴 때의 느낌과, 내 목덜미에 살짝 힘을 주며 간질 거리며 만지작 거려줄때의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개울물에 박아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구역을 뜰까도 생각했는데, 이 동네 어느 집에 간들 이만하게 밥 챙겨주는 곳이 없다는 걸 알기에 자존심 굽히고 긴 머리 눈치 좀 보며 슬슬  주위를 도는 수밖에......,

'자~ 긴 머리씨~~ 날 좀 쓰다듬어줘~~~ 응~~'

내가 이렇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도 긴 머리는 여전히 모른 체한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난 정말 길냥이 인거야?

난 긴 머리의 호동이라 느꼈는데...,


"저리 가~~ 이 양아치야, 원래 이 집에 있던 아이는 판봉이야! 어디서 제 집인척 싸움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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