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꼬꼬맹이 새싹들이 언 땅을 뚫고 싹을 올리는 게, 봄이 가든 초입까지 들어와 있는 듯하다. 작년 봄, 이 꽃님이들은 꼭 누군가 순서를 일러준 것처럼 차례차례 꽃대를 올려 꽃봉오리를 하나둘 터트리며 뿜어낸 향기가 아직도 내 주변에 머물러 있는 듯 아련하다. 인간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다채로운 색과 향기의 향연에 '내가 이것들을 심었단 말이지? '라 중얼거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든을 들락거렸다. 보고 내려오면 또 보고 싶고, 그 잠깐사이 또 얼마나 꽃봉오리가 열렸을지, 모든 게 다 궁금했다. 어떤 아이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로 방글거리고, 어떤 아이는 매혹의 경지를 넘어서 있었다.
나의 꽃, 내 장미들... 너무 예쁘죠!
슈퍼마켓이 꽃시장
테스코에서 데려온 '은방울 꽃' 뿌리들
이곳 마트 어딜 가나 꽃과 식물들이 맨 앞자리를 차지해 손님을 맞이한다.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뭐든 한두 개씩 들고 나오는 내게 '모모'는 꽃 중독자라 한다.
오늘 오후, 식재료가 떨어져 동네 마트(테스코)에 갔었다. 어김없이 꽃구경을 하던 중, 은방울꽃이 진열대에 가득 쌓여있는 걸 발견한 나는 언제나 그렇듯 두 박스를 트롤리에 사뿐히 올려놨다. 그런 내게 모모가 한마디 했다.
"우리 집 가든에 그것들 들어갈 공간은 있어?"
"두 개에 5 파운드면 아주 싼 거야!"
모모는 동문서답하는 내 말에 황당해하며 다시 한마디 한다.
"그게 뭔데?"
"응, 이거 은방울 꽃인데, 꽃말이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래. 이 꽃으로 만든 신부 부케를 봤는데 정말 예쁘더라. 그래서 우리 진이(딸) 시집갈 때 내가 이 꽃으로 부캐 만들어 줄 거야, 그래서 꼭 사야 해!"
"......:"
"아, 그러려면 두 박스로는 부족하겠다. 두 개 더 가져올게."
"딸내미 언제 결혼한다 했어?"
"아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해야지..., 어쨌든 나 이거 산다."
이렇게 작년 봄부터 우리 집 가든에 꼭 심고 싶었던, '은방울 꽃'과 꽃잎이 독특한 백합을 새해 첫 손님으로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사실, 우리 집엔 작년에 남프랑스에서 들여온 은방울 꽃 두 그루가 심어져 있다.
우리 집 정원엔 오늘 들인 이 녀석들이 앉을자리가 없다. 그래서 텃밭을 살짝 줄일 계획이다.
작년 오월, 런던에 사는 딸내미가 6개월간 프랑스 툴루즈로 파견 나갈 일이 있어, 딸덕에 겸사겸사 열흘 남짓 그곳에 머물며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중,
꽃처럼 예쁜 한 여인이 그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은방울 꽃'을 한 손에 쥐고 걸어가는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요정같았다. 그녀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손에 쥔 은방울 꽃향을 맡고 난 잠깐 아찔했었다. 그땐 그게 은방울 꽃 향이었는지, 그녀의 향기였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었지만, 분명 인위적인 향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 여인을 스쳐 보내고,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화원, 슈퍼, 거리에 온통 은방울꽃이 넘쳐났다.
크고 작은 꽃다발이나, 예쁜 화분에 한 그루씩 담아 팔고 있었다.
나는 그 향기가 몹시 궁금해 바게트를 사러 들어간 슈퍼에서 은방을 꽃 한 폿트를 들어 살짝 향기를 맡았다. 여린 은방울 꽃 입술을 살짝 건드렸더니, 귀여운 방울 소리가 향기로 나폴 나폴 날아다닌다.
'맞네, 조금 전 그 향, 사과향+옅은 흰 장미향+작은 레몬조각을 던져놓은 듯한 향?'(내 코의 감각)
세상에 어떻게 이런 향을 낼 수 있지? 난 왜 우리 집에 이걸 심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