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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an 25. 2024

영국 길냥이 "양아치"

 

가든 여기저기 영역표시 해두고 살고 있는, 상당히 뻔뻔한 '아치'


요즘 날이 좋다는 핑계로 매일 바깥나들이를 하다 보니, 가끔 해가 서산을 넘고도 한참 지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잦다. 늦은 시간 차를 주차하고 대문을 열 때쯤이면, 우리 집 뒷가든에 살고있는 길냥이 '양아치'는 뒷가든에서 대문까지 후다닥 달려 나와서는 '냥냥냥~~ 옹옹옹~~'거리며 온몸을 여기저기 비비대며 요망스럽게 난리법석을 떤다. 우리가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 집안으로 들어서면,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제 밥그릇이 놓인 뒷쪽으로 궁둥이를 살랑거리며 사라진다.  

짐정리하고 뒷문을 열 때까지 '양아치'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이렇게 앉아 매섭게 날 노려본다. 밥때를 많이 놓쳐 나름 삐졌다는 신호인데, 삐지면 귀여워 보여야 하는데 사납기만 하다.  

"뭐 하냥~~~~ 빨리 밥 줘!!".

"오늘은 사료는 안 먹을 거다. 참치팩을 주거라!!"

빨리 밥 달라고!!!\

'양아치' 저녁, 나는 몰라.

나는 별을 담으련다.


고양이 사료를 꺼내 밖으로 나가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말았다.

흑연처럼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얼마 만에 별을 보는 거야? 저 많은 별들..., '

사료봉지를 내려놓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나왔다.

낡은 휴대폰으로 찍은 저 별들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까?

몇 번을 찍고, 다시 찍고를 반복했다.

내가 본 별과 휴대폰이 찍어준 별은 천지차이다.

'사진 찍는 소리에 별들이 놀라 도망갔나?'

금방, 휴대폰 속 앨범이 시커먼 색으로 도배되어 버린다.

......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 녀석 정신없이 머리를 박고 먹는다.

오 두둑 오 두둑...,

하나씩 깨무는 소리가 별 헤는 소리 같다.

오 두둑, 별 하나에 참치팩 하나

오 두둑, 별 둘에 닭봉 둘

오 두둑, 별 셋에 햄 세장

오 두둑, 별 넷에 소고기 네 점

......

'양아치'의 오 두둑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도 저녁을 챙겨 먹었다.

하늘의 별들이 밥 먹는 내내 마음을 가만두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2층으로 올라가 밀린 청소를 해놓고,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고 뒤뜰로 나갔다.

온 집안의 불을 다 끈다.

불빛이 저 별들을 퇴색시킬 거 같았다.

휴대폰을 들어 다시 밤하늘에 들이댄다.

내 휴대폰 앨범 한 면이 또다시 시커멓게 채워진다.

새까만 밤하늘 속, 하얀 눈송이 같은 별들이 찍혀있는 사진도 더러 있다.

이 겨울, 이 외딴곳에서 만난 나의 별들이다.


'양아치'는 참치팩에 대한 미련 때문에 밥그릇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안쓰러운 마음에 참치팩을 하나 뜯어 밥그릇에 부어 줬다.

녀석, 그것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워 버리고,

앞발을 번갈아 가며 열심히 입 주변을 닦아낸다.

그러고,  

참 후...,

뒤뜰에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불안한 마음에 후다닥 내려가 봤다.

이 집에서 원래 끼니를 해결했던 원조길냥이 '냥판봉'군과 '양아치'군이 살벌하게 대치중이다.

주객이 전도된 지 오래전 일이다.

'냥판봉'군은 진즉 도둑고양이로 변모해 저렇게 밤늦은 시간에 찾아와

'양아치'가 먹다 남긴 사료 몇 알, 먹다 남은 닭뼈다귀를 핥아먹고 쓸쓸히 퇴장한다.

혹시 늦은 밤 '냥판봉'군이 들를까 싶어 사료를 한 줌씩 빈 그릇에 부어두지만 소용없다.

 '양아치'가 저렇게 밥그릇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가 우리 집  작은 뒷마당에서도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끼어들 일은 아니지만, 바라보는 내내  씁쓸하다.

늦은 밤,  뒷가든에서 냥판봉군과 양아치가 대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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