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퍼톤스의 "Give up"이라는 노래에 빠져 무한 스트리밍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페퍼톤스는 "행운을 빌어요" "긴 여행의 끝" "공원 여행" 등 희망 차고 힐링이 되는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허나 최근에 듣고 있는 노래는 제목부터가 페퍼톤스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Give up 포기해라?"
처음 든 생각은 페퍼톤스가 오래 활동했고 요즘 사회나 분위기나 너무 힘든 시기라서 한 번은
부정을 담은 노래를 냈나 싶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오히려 나를 자극하게 만들어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엄청난 마케팅 전략이다)
생각보다 Give up이라는 노래는 희망적인 메시지와 벅차오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는 모두가 처음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이 점점 사리지고 희석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좋지 않은 소식들 속에 열심히 달려보지만 절망의 순간에 포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점점 포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Give up은 "절망"이라는 녀석으로부터 "나를 포기하여라"라고 외치는 노래입니다.
"오 절망이여 나를 포기하여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던
해가 비춘 어느 날, 그가 마침내 멈춘 곳"
- 페퍼톤스 Give up 中
그래서 제 나름대로 Give up의 노래를 한번 뜯어보면서 그 의미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Give up 가사는 제 심금을 울리고 깊게 한번 고민을 던지는 질문들도 있었습니다.
노래에서는 부정적인 상황들이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메마른 표정의 몹시 지친 그가 이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한다.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거기 주저앉으려 한다.
눈이 멀어버린 늙고 병든 그가 그의 오래된 꿈을 멈추려 한다.
비좁고 더러운 감옥 속에 갇혀 조용히 지친 눈을 감으려 한다.
기적을 쫓아 모든 걸 바친 그가 운명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한다.
언젠가부터 패색이 짙은 게임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 페퍼톤스 Give up 中
언제부턴가 우리가 목표하고 흔히 "꿈"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어떤 사회, 조직에
몸을 들이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초심이 점점 잊히는 건 아닐까요?)
당장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타협해 바라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사에서 "눈이 멀어버린 늙고 병든 그"라는 표현이 점점 사회화가 되어버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아가는 것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꿈을 더 이상 좇지 않고 포기하고 멈춘다면 과연 어떤 의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의 삶의 진정 목적은 무엇일까요?
"비좁고 더러운 감옥 속에 갇혀 조용히 지친 눈을 감으려 한다."
라는 표현 또한 힘든 세상, 사회, 현실에 결국은 타협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요즘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와 점점 기회의 문이 좁아지는 현실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꿈이라는 "기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달려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기적을 맛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포기하게 됩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지만 그것이 안될 것이라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린 혹시나 하는 "기적"을 믿고 살아갑니다.
때론 이러한 "기적"에 우린 또 하루를 살아가기도 하죠.
옛날엔 그래도 "열심히"만 한다면 꿈에 많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개천에 용이 난다라는 표현이 많았죠
하지만 요즘은 그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사에서도 "몹시 지친 그가 이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한다."
이 문장을 불행하게도 공감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전에는 지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요즘은 사사로운 하나하나가 저를 지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럼 전부 포기하면서 살라는 것인가?
페퍼톤스의 Give up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헤이 여기야, 헤이, 잠깐 기다려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
아주 오래전 멈춰버린 이 세상이 지금 아주 조금 움직인 것 같아
여태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아직도 내게 남은 것 같아
어둠 속에서 나타난 목소리
아주 오래전에 잊힌 기억이
어디선가 널 부르고 있어
때로 까마득한 어둠이 수도 없이 쌓인 상처가
뜨지 않는 해처럼, 끝나지 않는 밤처럼
목을 조르는 지독한 절망의 순간
그때 또다시 널 불러 줄
"마음속의 누군가"
"이제는 떠오르지 않는"
"아주 오래돼버린 어떤 약속"
- 페퍼톤스 Give up 中
그럼에도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된 실패 속에서 희망과 기적에 기대어 버티고 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마무리를 알면서도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일을 하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이유"가 목을 조르는 지독한 절망의 순간에 다시 "나"를 불러주는 하나의 목소리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 모두가 이루고자 하는 "꿈" 앞에서 수없는 실패를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들인 시간과 비용 때문에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나쁘다고 생각 안 함)
혹은 돈과는 상관이 없는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의 가치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죠.
아래는 제가 Give up 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이며, 페퍼톤스의 희망참을 느낄 수 있습니다.
- 페퍼톤스 Give up 中
저는 포기하지 말고 버티라는 고리타분한 말을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사실 본인이 제일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정말 버티고 달린다고 이뤄낼 수 있는 꿈인지 목표인지
그리고 그 꿈과 목표가 과연 하나로만 귀결되는지도 의문입니다.
꿈은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당신의 꿈을 포기해라 포기하지 말고 버티라는 말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꿈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한다면 무한히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무수한 꿈속에서 정말로 지치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해도 좋습니다.
왜냐면 다른 꿈들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꿈을 위해 포기하기 싫다면 그 또한 좋고 응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이상향에 대한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다만 너무 쉽게만 바라보고 꿈의 무게를 한없이 작게 잡아서 쉽게 타협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페퍼톤스의 노래 가사처럼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서 "나"를 포기하지 말고
나를 지치게 하는 "절망"이라는 녀석에 대고 시원하게 말해봅시다!
"절망이여 나를 포기해라!"
달리고 또 달려서 지지 않는 별처럼 끝나지 않는 꿈을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고 절망을 향해 포기하라고 외쳐보자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 앞에 수없이 펼쳐진 "천개의 우산" 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