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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에 남는 마음

by 윤경환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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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힘들다.

세상에 쉬운 이별은 없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이별들을 경험해 왔지만 한 번도 이별이 유쾌한 적은 없었다.

그 이별이 마땅한 운명이었다고 할지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남기 마련이다.


어릴 적 키우던 병아리가 죽었을 때 세상이 떠나가도록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그 어린 나이에 며칠간 식음도 전폐할 정도로 슬퍼했다. 그게 내가 처음 마주한 이별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 활기차게 먹이를 쪼아 먹던 병아리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사고로 세상을 달리 한 적이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지만 머리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멍해진 기억이 난다. 소식을 들은 날 친구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가끔은 그 친구의 집 앞에 무성한 풀이 자라 있는 꿈을 꾸곤 한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다.

우리가 이탈리아를 이겨서 거리에 빨간 티를 입은 사람들이 함성을 지를 때 할머니는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계셨다. 내가 급히 병실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겨우 들릴 듯 한소리로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진 않았지만 그때는 그렇게까지 슬픔에 젖진 않았던 것 같다. 대신 텅 빈 할머니의 집을 바라보며 허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 연애를 했다.

2년 정도를 사귀었던 여자 친구에게 내가 첫사랑 이기도 했다. 참 많이도 사랑 표현을 했던 것 같다. 나와 그녀 모두에게 비교 대상은 없었기에 그저 순수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많이 서투르기도 했다. 결국 우리의 서투름은 오해로 이어졌고 깊이 사랑했던 만큼 치열하게 다투었다. 사랑한 만큼 지쳐갔다. 결국 이별은 예정처럼 다가왔고 먼저 이별을 선언한 그녀의 눈빛은 슬퍼 보였다. 처음이었기에 언제든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의 이별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몇 년이 지나서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제야 내 인생에서 소중했던 추억을 완전히 지워야 한다는 괴로움을 느꼈다.


서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젊은 시절 결핵을 앓으셨던 어머니의 폐는 남들보다 약했다. 오랜 시간 천식에 시달리다 미세먼지가 심하던 때 폐렴이 왔다. 급속도로 폐가 약해진 어머니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의식이 없는 어머니의 마지막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 온기가 남아 있던 어머니의 손을 밤새 꼭 붙잡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내 마음은 가득 찬 물 잔처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터지곤 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별을 마주하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이별을 마주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이별을 한다는 건 만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만남이 없다면 이별도 없으리라.


만남과 이별은 하나로 묶인 실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통해 행복을 누렸던 만큼 이별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는 게 순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이별 후에 남는 마음은 그리움과 슬픔이지만 행복했던 추억도 깃들어 있다.


행복했던 추억이 없다면 삶은 무채색이다.

비록 그리움과 슬픔이 우리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그 순간 비추는 행복한 추억은 삶에 채도를 높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은 영원할 수 없기에 이별일지도 모른다.

아침의 햇살도 머무르지 않고, 예쁘게 물든 저녁노을도 잠시면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나라는 존재도 먼 훗날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은 온다.


이별은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이별은 없다.

하지만 이별이 있기에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다채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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