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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파도를 잠재우는 방법

by 윤경환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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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홀로 드라이브하다가 강릉 해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거닌 적이 있다.

동해안의 짙푸른 바다를 보니 한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이 덩달아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부산이 고향이라 바다를 보면서 크게 흥이 나는 적은 없는데 희한하게 동해바다를 보면 설레는 마음이 든다. 뭔가 더 깊고 야성적인 느낌이랄까. 깊고 짙은 푸른빛의 바다를 보면 비로소 여행을 왔다는 기분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파도도 잔잔했다.

파도는 고이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정해진 만큼 차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끊임없이 역동하지만, 결코 넘치는 법이 없는 파도를 바라보자,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내 마음도 파도처럼 고여있지 않지만 넘치지 않을 만큼만 넘실거린다면 세상 살기가 참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뜩 영화 관상에서 배우 송강호가 했던 대사 중 일부가 생각이 났다.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그렇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다. 파도가 넘치지 않는 건 바람이 잔잔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거세면 파도도 거세질 게 뻔하다. 단순히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만 놓고 적당히 넘실거리기를 바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그렇다고 바람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폭풍우로 인해 바람이 거세질 때는 바람 따라 성난 파도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걸까.


파도의 처지가 되면 바람 따라 일렁일 수밖에는 없다. 파도의 운명은 바람에 달린 것이다.

성난 파도를 잠재우는 방법은 건너편 고요한 언덕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다. 파도와 내가 일치되는 것을 벗어나 고요한 언덕에 떨어져서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파도는 서서히 동요를 멈추고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그럴 수 있다면 바람이 운명을 결정짓지는 못한다.


그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이 거세지면 거센 파도가 되기 전에 언제든 고요한 언덕으로 넘어가 파도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바람이 잦아들면 파도가 되어 적당히 넘실거리면 되니까.


그런데 굳이 파도가 되어야 하나?

나는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화창한 날씨에 고이지도, 넘치지도 않게 철썩거리는 파도와 짙고 푸른빛의 바다는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다시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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