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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강을 건너는 당신에게

[장자] 빈배이야기

by 윤경환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장자 '외물 편' 중 빈배이야기 -



장자는 강에서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어느 날 명상에 잠겨 있던 장자의 배를 어떤 배가 부딪쳐 왔다. 화가 치민 장자가 무례한 배의 주인을 향해 소리를 치려 했으나 그 배는 비어 있었다.


그저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온 빈배였다.


만약 부딪힌 배에 주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평소에 화가 없던 사람이라도 운전 똑바로 하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빈배는 아집을 내려놓은 상태를 상징한다.

화가 난 상대가 욕설하더라도 아집과 자아의식을 내려놓은 사람에게는 욕설에 대해 해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


배를 들이받은 상황이 삶에서 마주하는 갈등 상황이나 타인의 언행이라면 감정의 주체인 '나'를 내려놓은 상태가 빈배다.

어렵지만 내가 빈배처럼 반응한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도 금방 분노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상대방과의 갈등 상황에 국한하지 않고

장자의 사상에 빗대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장자의 빈배이야기는 지나친 소유욕과 자의식에서 벗어난 삶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우화이다. 장자는 소요유를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소풍 온 사람처럼 여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말처럼 쉽지가 않다.

출근해서 눈앞에 펼쳐진 일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는 금세 가버리고 그렇게 몇 년이라는 시간도 금방 흘러간다.


이렇게 바쁘게 살고,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더라도 성공하려면 한참 멀었다.

치열하게 살아가기에도 모자란 세상에 장자의 조언은 허무맹랑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십 대 이후로 장자의 이야기는 덮어두었다.

낙천적 허무주의자의 독백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곧 마흔을 앞둔 나에게 장자의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들린다.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과연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갈망, 그것은 자유다.

단순히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만 느끼는 자유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충족되는 정신적 자유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정신적 자유는 항상 뒤로 미루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정신적 자유는 나의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소진하며 사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이런 의미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언젠가는 어딘가에 의존하지 않고

오롯한 내 힘으로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러려면 세상의 눈치를 보며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있는 것부터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운명의 물길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고, 지금의 행복에 힘을 실어주고 점차 늘려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순수한 여행자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다보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목적지에 닿게 되지 않을까.


빈배가 아니더라도 그저 호수의 풍경을 즐기는 여행자끼리 부딪쳤다면 인상을 찌푸리며 싸우기보다 껄껄거리며 웃었을 것이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유유히 호수 위를 떠가는 여행자의 배가 되면 좋겠다.


문뜩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한다던 천상병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난다.


삶을 소풍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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