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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의 힘

법정 [무소유] - 설해목

by 윤경환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법정 [무소유] - 설해목


누구나 겪어봄 직한 일이지만 어릴 적 말썽을 부리다가 어머니가 든 회초리에 맞은 적이 있다.

다시는 말썽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서야 어머니는 회초리를 거두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회초리로 맞은 종아리는 피멍이 들고 잔뜩 부어 있었다.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러움에 북받쳐 잠이 들었다.

그날 새벽, 종아리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내 종아리에 생긴 멍 자국에 연고를 바르고 계셨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파서 흘린 눈물과는 차원이 다른 눈물이었다. 나를 매섭게 때린 것을 어머니가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어머니의 아픔이 손의 감촉을 통해 느껴지는 순간 얼어붙은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수필집에 담긴 설해목이라는 글에서도 집과 학교에서 포기한 망나니 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스님에게 망나니 학생을 보내어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스님은 학생에게 훈계하기보다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을 들어준다.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대까지 하던 학생은 예상치 못한 노승의 태도에 주르륵 눈물을 떨구게 된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한 가지 따사로운 손길에 감동받은 것이다. 망나니 학생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진정으로 원했던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을지 모른다.


무쇠로 된 정은 빠르게 돌을 깎아내릴 순 있겠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직선적이고 날이 선 형태보다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은 조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한낱 조각이라도 부드러운 물결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사람 마음은 오죽할까! 사람의 마음을 완만하게 만드는 건 자애롭고 따뜻한 마음이다.

유약해 보이기도 하는 이 부드러움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자발적인 헌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타인이 움직일 수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감동만이 요지부동한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열쇠다.


물결처럼 쓰다듬는 부드러움은 태초의 사랑을 품은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케 한다.


자애로운 마음, 차별 없는 사랑.

아, 이 부드러움의 힘이 오늘을 견디게 하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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