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양 Aug 12. 2024

19년 전 첫 해외 여행, 첫 소설 출간

방콕, 파타야





2005년, 새해가 떠오른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일산의 한 서점에 들어섰다.



신간 매대를 기웃거렸지만 책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규모가 작은 서점에는 입고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버스를 타고 광화문의 대형 서점에 가야하는 걸까. 고민하는 찰나, 찾던 책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팝콘&콜라’(영언문화사, 2005). 편집자의 말에 고분고분 ‘좋아요, 다 좋아요’ 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상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바로 그 제목과 표지였다.



(초고의 제목은 ‘귀족수업’이었는데, 편집자의 의견으로 ‘팝콘&콜라’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편집자가 뜬금 없이 이 제목을 밀어붙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연히 소설에는 팝콘도 안 나오고 콜라도 안 나온다. 정말 소설과 분위기도 내용도 매치되는 게 전혀 없는데도 그때의 나는 내 주장을 펼치기 어려운 초짜 꼬맹이였다.)



감격어린 손길로 책을 몇 번 쓰다듬었지만 구입하진 않았다. 이제 갓 나온 신간,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신인 작가의 책을 아침 댓바람부터 사가는 건 내가 이 책을 쓴 작가라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던 작은 오피스텔로 돌아가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자랑스러웠고, 설렜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도 추운 줄 몰랐다.



기대감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로맨스 소설이 곧잘 드라마화되어 붐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소설 자체는 유치하고 허술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운이 좋아 드라마화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겠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



어릴 때부터 글쓰는 걸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주로 팬픽을 썼었다. 연예인 이름을 빌리지 않고 소설을 써서 로맨스 소설 연재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순전히 심심해서였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게 신이 나서 순식간에 완결까지 냈는데 그냥 묻어버리기는 아까웠다. 이런 허접하고 아마추어 같은 소설을 보냈다고 욕하면 어떡하지, 떨리는 손길로 출판사를 검색해서 투고 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 아침부터 핸드폰이 울렸다.


<영언 문화사에요. 원고 투고하셨죠?>



아직도 그날 아침의 기쁨이 선명히 기억난다. 영언 문화사라니, 고인물이다 못해 화석쯤 되는 40, 50대 로맨스 소설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해외 로맨스 소설 번역 출간으로 유명했고, 한국 로맨스 소설 시초들을 출판한, 로맨스계에서는 유서 깊은 출판사였다.  



계약을 하러 서울의 출판사로 찾아갔다. 그때 나이 22살, 종류를 불문하고 계약서라는 종이에 도장을 찍어 본 건 처음이었다. 계약 조건들이 어떤 수준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후로 몇 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치는 동안 해가 넘어갔고, 드디어 출간이 된 것이다.




..




다음날 작가증정본이 집으로 배송됐다. 몇 권을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께 보내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곧 부모님을 만날 터였다.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언니들은 늘 살뜰히 부모님을 챙겼다. 이번에도 부모님을 위한 효도 여행을 준비했는데,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지만 두 분만 보내드리기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백수인(출판 계약을 하고서도, 책이 나와서도 나는 한동안 백수 였다. 돈벌이를 못했으니.) 막내를 딸려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여권조차 없었다. 아직 다양한 경험을 하기엔 어리기도 했지만,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만약 언니들이 모든 경비를 부담해주지 않았다면 굳이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지는 동남아 여행의 1번지라 불렸던 태국, 방콕과 파타야였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599,000원(혹은 699,000원)짜리 3박 5일 꽉 채워 동남아를 관광하는 패키지 여행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저렴한 가격의 비밀은 선택 관광과 의무적으로 가야하는 쇼핑이란 걸 여행지에 가서야 알았다)



따끈따끈한 여권을 들고 언니에게 빌린 캐리어를 끌고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당연히 공항도 처음, 비행기도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첫 소설에 대한 반응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폭탄이다, 출판사 믿고 읽었는데 실망이다, 읽은 내 시간이 아깝다 등등. 사실 그나마의 악평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출판사에서는 정산도 미루고 있었다. 출판사가 망해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고작 백만 원대의 인세였는데도 달랑 계약금 30만 원만 받고 나머지를 날릴 처지였다.




그런데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러니까 출국 심사나 짐 검사같은 긴장되는 절차가 끝난 뒤부터 발걸음이 가볍고 심장이 간질간질하기 시작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 소리나 들으면서, 초고부터 시작하면 반 년 넘게 매달렸던 소설을 단돈 30만 원에 팔아먹어놓고, 주책맞게 설렌다.



가이드를 졸졸 따라 다니는 패키지 여행이었음에도 꽤 재밌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즐거웠다. 관광버스를 타고 이국적인 창밖 풍경만 바라봐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쇼를 보고, 패러세일링을 하고, 바다에서 물놀이를 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 것조차 행복했다. 쇼핑센터에서 가이드의 은근한 압박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 이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지, 하면서 기분 좋게 넘겼다.


(패키지도 이렇게 재밌는데,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자유여행은 얼마나 황홀할까!)  



3박 5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순간 순간 ‘폭탄’과 ‘30만 원’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바쁘게 이어지는 패키지 일정 덕분에 가볍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스트레스 해소’라는 거구나.



일상의 나를 벗어난다는 의미를,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깨달았다.





..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설을 출간하고 인세를 받으면 여행을 다녔다. 물론 그 돈으로 부족할 때가 많아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두기도 했다.



주로 항공료와 숙박비가 저렴한 비수기에 다녔고, 덜 비싸고 덜 인기 있는 지역으로 다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일본 도쿄에 비행기를 타고 가는 대신, 후쿠오카에 배를 타고 간다거나. 대만 타이페이 대신 가오슝으로 여행을 간다던지.)



여행을 떠나면 소설 출간 후 의례적으로 치러야 하는 여러 신랄한 리뷰와 날카로운 한줄평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좋은 말을 써주신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아픈 말이 더 깊게 폐부를 찌르는 법)   



여행이 너무 좋을 때면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내 책을 돈주고 사서 봐준 사람들이니, 마땅히 할 수 있는 욕(?)이라고 생각하며 너그러워지기까지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의미로 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 당시에는) 회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돈 못 버는 사람치고는 꽤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다.



방에만 틀어박혀 글만 쓰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사회 생활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어떤 결정을 하는 순간, 심지어 그것이 첫 경험이라면 그 선택으로 인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심심풀이로 썼던 소설을 폴더 속의 추억으로만 묻어두었다면, 이후 19년 동안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분명한 건 지금까지 소설을 쓰며 살진 않았을 것이다.



크게 가고 싶지 않았던 첫 해외 여행, 태국으로 향하던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외향인 탈을 썼지만 사실 극소심한 성격의 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경험들 덕분에 타국을 방랑하는 지금의 삶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지도.



비록 첫 해외 여행은 값싼 패키지,

첫 소설도 폭탄 소리를 들으며 대실패로 끝났지만


지금 해외에서 마감하는 삶의 시작은

아마도

19년 전 바로 그때부터였다.


이전 04화 캐나다에서 마주친 나의 20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