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엄마가 한 달 가까이 양곤에서 지내다 가셨다. 매일 같이 보던 손녀딸이 보고 싶을까봐 이후로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매일 아침 영상통화로 아기를 보여드린다.
한 번은 영상통화 도중에 럭키가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힘을 주면서 응가를 시작했다.
“얼른 전화 끊고 씻겨줘.”
“응. 박서방 불렀어. 박서방이 씻길거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이 거실로 나와 럭키를 번쩍 안아 들었다.
“니가 씻기며 되지.”
“나는 N이랑 같이 애 보고, 이유식 만들고, 럭키 잠들고 박서방 골프 연습장가면 내가 애 옆에서 꼼짝 안 하고 지켜야 하는데 이 정도는 박서방이 맡아서 해도 돼.”
“그래도 출근해야 하는 사람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은근히 사위가 육아에 적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외출을 해서 씻기기가 힘든 상황에서는 물티슈를 쓰지만 럭키가 집에서 볼일을 보면 무조건 엉덩이를 물로 씻기는데 남편이 출근 전에는 남편이, N이 출근한 뒤에는 N이 씻긴다. 물론 나 혼자 럭키를 돌볼 때 응가를 하면 내가 씻긴다. 그런데 아직까진 그런 타이밍이 흔치 않다.
그나마 엉덩이 씻기기는 다섯 손가락쯤은 꼽을 수 있지만, 럭키의 목욕은 아기가 태어난 이후 아직까지 내가 주도적으로 해본 적 없다.
조리원을 나와서는 산후도우미 님이 목욕을 시키셨고, 주말에는 출산에 맞춰 한국에 들어온 남편이 목욕을 시켰다. 양곤에 오기 전 일주일 정도는 경기도의 둘째 언니집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는 둘째 언니가 모든 육아를 도맡아 해주었다.
직업병인지 예전부터 시원찮았던 손목과 손가락이 출산 후 더 시큰거리고 통증이 심했다. 늦은 나이에 출산을 한 막내동생이 안쓰러웠던 둘째 언니는 한국에 이어 양곤까지 함께 와서 일주일간 아기를 끼고 돌보았다.
“우리 동생 아기 낳은지 얼마 안되서 조심해야해. 특히 손이랑 팔, 허리 아파. 네가 잘 도와줘야해.”
언니는 한국에 돌아가기 직전까지 N에게 신신당부하며 한국 엄마 스타일로 아기 목욕 시키는 방법을 꼼꼼하게 일러주고 갔다.
이후로 아기 목욕은 N이 시키고 나는 옆에서 거들다가 목욕이 끝나면 아기를 안아들고 가서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혔다. 헬퍼(가사도우미)인 딴딴을 고용한 뒤로는 목욕 후에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는 것도 N이 이어서 하고 욕실 뒷정리를 딴딴이 맡았다.
럭키가 어릴땐 욕조를 썼고 지금은 한국서 사온 샤워핸들을 사용하는데 훨씬 씻기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은 럭키가 목욕 후 입을 옷을 골라 꺼내놓고, 생수를 따뜻하게 데워 바가지에 준비해놓는 일이 전부다. (샤워기 필터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기가 쓰기에 미얀마 수질이 깨끗한 편이 아니라서 마지막에 헹굴 때는 생수를 데워서 사용하고 있다.)
아직 한 번도 아기 목욕을 주도적으로 시켜본 적 없다는 말을 듣고 친정 엄마는 ‘니 팔자가 상팔자다’라고 말하며 사위 눈치를 살피긴 했지만, 딸이 힘들게 육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이었다.
..
미얀마 생활은 한국에 비해 모든 점이 불편하다. 날씨, 음식, 수질, 전기 공급을 비롯한 인프라를 포함해서 질 좋은 아기용품 하나 구하기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있다.
사실 출산을 앞두고 남편이 먼저 양곤 생활을 시작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아기의 양곤행을 반대했었다. 인프라도 문제지만 불안정한 정치 상황도 한 몫했다.
그럼에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신념과, 처음부터 남편이 육아에 동참했으면 하는 욕심 때문에 이제 갓 40일을 넘긴 럭키와 비행기를 타고 미얀마로 왔다.
솔직히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기 이유식 만들다 지칠 때 한국의 배달 이유식이 너무 부러웠고, 질도 좋은데 가격도 합리적인 아기용품들, 저렴한 가격에 새것이나 다름 없는 육아용품들이 넘쳐나는 당근 거래, 클릭 한 번으로 다음날 아침이면 받을 수 있는 배송 시스템(물론 시티몰 앱으로 다음날 배송, 한 시간 내 배송인 익스프레스 배송을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 물건이나 식재료가 한정적이다), 아기를 위한 유기농 식재료들… 한국의 다른 엄마들은 한우만 먹인다는데 나는 호주산 냉동 소고기라도 구하려고 왕복 1시간이 넘는 매크로(코스트코와 비슷한 창고형 마트)에 택시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
럭키가 계속 먹어온 분유는 압타밀이라는 제품인데 달러 대비 짯(미얀마 화폐) 환율이 폭락하며 가격이 거침없이 오르더니 어느새 분유를 찾을 수 없게 된 적 있었다. 잘 먹던 분유를 다른 제품으로 바꾸는 것 자체도 아기에게 부담이 될까봐 걱정이 되는데, 심지어 여기서는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는 한국이나 유럽산 분유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번 살 때 여러 개를 구입해두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몇 주간 온갖 마트, 약국, 아기용품 매장을 헤매다 결국 압타밀을 구입하는데는 실패했다. 중국이나 동남아산 분유를 먹이고 싶지 않아서 고민하다 고작 분유가 반 통 정도 남았을 때 다행히 다른 영국산 분유를 발견했다.
그것마저도 한 번 품절되면 언제 입고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 매장에 있던 재고품을 모두 구입해서 쌓아두었다.
(그것 뿐인가. 기저귀 찾아 삼만리 한 사연도 만만치 않게 눈물겹다.)
이처럼 한국처럼 다양한 선택지는 꿈도 꿀 수 없는 육아가 일상인 미얀마의 생활이니 갑갑할 때마다 한국이 몹시 그리워진다. 남편을 양곤에 두고 아기만 데리고 한국에 가서 한동안 살다 올까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가서 육아를 한다면 지금 이 순간처럼 브런치 글을 쓸 수 있는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친정 엄마와 언니들이 있고 헌신적으로 도와줄 가족들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들의 생활이 있다. 도움을 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인프라를 누릴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누군가 매일 아기 목욕을 대신 시켜주는 삶은 꿈도 꿀 수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기에게 매달려있어야 할 것이다. 독박육아를 하는 한국의 많은 위대한 엄마들처럼. 아기를 향한 사랑으로 버티고 버티면서 점점 피폐해지는 내 삶의 질에 서글퍼질 것이다.
엄마의 ‘상팔자’소리, 내니(육아도우미)와 헬퍼(가사도우미)에 대한 친구들의 부러움을 들을 때마다 만만치 않은 동남아 생활을 떠올리며 억울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미얀마에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 곁에 N과 딴딴이 없었다면, 나같은 저질체력 유리멘탈 노산엄마는 고통스러워하며 육아를 했을 게 분명하다. 지치고 우울해서 지금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모르고,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길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
(사실 럭키가 등센서와 잠투정이 심한 더 어린 아기였을 땐 N이 낮에 육아를 도와주는데도 눈물날 만큼 힘들었었다. 그러니 도와주는 사람 일절 없는 육아의 난이도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둘째를 고민하다 출산의 고통과 그때의 힘듦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