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시간씩 와서 놀아주는 파트타임이래. 쿠커는 한국 음식 잘한대. 식재료만 사다두면 만들어놓고 간다더라.”
“쿠커 좀 욕심난다. 나도 쿠커 알아볼까?”
내 말에 남편이 픽 웃었다.
“왜 웃어?”
“우리 양곤 오기 전에 자기,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거 불편하다고 사람 쓰기 싫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쿠커까지 욕심 나?”
맞아, 나 그랬었지.
지금은 내니(육아도우미)와 헬퍼(가사도우미)까지 고용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양곤에 오기 전에 사람을 쓰고 싶지 않았었다.
남편은 물건이나 돈에 손대는 고용인들의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들어서 보안과 안전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나의 거부감은 결이 조금 달랐다. 나의 개인적인 공간에 낯선 사람을 들여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 눈곱도 안 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평소에 집에서는 속옷을 입지 않는 습관도 마음에 걸렸다. 나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울 때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집안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한없이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동남아 생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내니와 헬퍼라고 했다. 누군가는 사람을 쓰지 않는 게 바보라고 할 정도로 인건비가 낮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낼 때는 호텔 레지던스에 살았기 때문에 직접 청소할 필요도 없고 조식 서비스 덕분에 아침식사도 해결되는데다 아이 없이 남편과 나 둘뿐이라 헬퍼를 구해야겠단 생각조차 할 필요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몸으로 신생아를 데리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 말도 통하지 않는, 인프라가 최악인, 동남아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는, 수년 전에 일어난 쿠데타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불안정한 정국의 - 미얀마에서 살아야 했다.
양곤은 그나마 미얀마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고 다른 지방에 비하면 안전한 곳이라고 들었지만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서 육아를 하고, 살림을 해야 할 일이 막막했다.
남편은 어차피 구해야 한다면 집에서 함께 지내는 상주 내니나 헬퍼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기가 신생아일 적에는 밤중 수유로 수시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잠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상주 내니가 밤에 아이를 데리고 자며 케어한 덕분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는, 현지에서 아이를 키운 분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주 내니나 헬퍼가 출퇴근하는 사람보다 더 월급이 낮았다.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출퇴근 내니 고용도 겨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마당에 24시간 함께 있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나와 아기가 양곤에 오기 전에 몇 명의 지원자들을 인터뷰했고, 경력도 풍부하고 영어로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 가능한 N을 고용했다.
내가 양곤에 도착한 다음 날 N이 첫 출근을 했다. 친언니가 양곤에 함께 동행해서 출산 후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나 대신 일주일간 육아를 맡아주는 한 편 N에게 집안일을 가르쳤다. N이 헬퍼와 내니 경력이 많다고는 하지만, 집집마다 살림 스타일이 다른 법이었다. 꼼꼼한 언니는 N에게 집안 대청소부터 시켰다.
헬퍼 겸 내니로 고용했지만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전까지는 N에게 갓난아기를 맡기기는 조심스러웠다.
처음 얼마간 N의 주업무는 집안 청소와 아기 젖병 설거지와 소독, 아기 손수건 소독뿐이었다. 언니가 양곤에 머물 때는 언니가 아기를 데리고 자면서까지 전담해서 육아를 해주었다. 언니는 체격이 작은 N이 아기를 돌보다 떨어뜨릴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N은 처음 아기를 안아볼 수 있었다. 내니 경력이 오래되긴 했지만 그녀가 돌보았던 제일 어린 아이가 생후 8개월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신생아를 맡기는 게 처음에는 우려스러웠다. 하지만 그 당시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내 몸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N은 아기 케어를 잘해주었다. 언니가 돌아가고 나서도 남편이 퇴근 후에 아기 목욕을 담당했었는데, 언젠가부터 N에게 아기 목욕까지 맡기기 시작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N에 대한 믿음도 커지고 그녀에게 의지하는 마음도 생겼다. 불편할 거라 생각했던 점들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대충 차려 먹는 밥도, 속옷 없는 헐렁한 티셔츠 차림도, 씻지 않고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두 달, 세 달, 반 년, 지금은 어느새 9개월차가 되었다.
현재는 N뿐만 아니라 파트타임 헬퍼인 딴딴도 우리 집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N이 출근할 시간에 나는 방 안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을 때가 많아서 알아서 들어오라며 알려주었고, N과 함께 아기를 데리고 아침에 카페나 마트에 갈 때 비어 있는 집에 들어와 있으라며 딴딴에게도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두 사람은 세제나 휴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생수는 언제 주문해야하는지, 나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다. 빨래가 마르면 우리의 속옷까지 개어 침실의 옷장 문을 열고 넣어둔다. 배달시킨 물건값을 선반 위에 올려두면 로비에 가서 물건을 찾아오고 거스름돈을 다시 선반 위에 남겨둔다.
현관 앞 선반에 물 값, 발전기요금, 배송시킨 기저귀값을 나란히 놓아두면 N이나 딴딴이 알아서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놓아둔다.
마트에 가면 N에게 지갑을 통채로 주고 계산을 대신 하라고 한다. 아기띠를 한 나 대신 N이 돈을 꺼내는게 편하기 때문이지만, 아무리 가까워져도 돈 간수는 안전하게 하길 바라는 남편이 알면 고개를 저을 일이다.
실온에 둔 채소를 사용하지 않으면 상할 거라는 걸 내게 알려주고, 굳이 따로 시키지 않아도 본인 살림 처럼 때가 됐다 싶으면 베란다 바닥과 냉장고 안을 닦는다.
자주 깜빡하는 나 대신 언제 무엇이 배송오는지, 전기와 수도 요금은 언제 내는지 기억하고 있다가 알려주기도 한다.
우리 가족의 내밀한 생활과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아직 한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이상 낯선 타인처럼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 남편이 일찍 골프 약속이 있어 새벽 5시부터 혼자 육아를 시작해야하는 날이면 N에게 전날 집에서 자고 가라고 부탁한다.
N은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을 하지 않고 오버타임 시급을 받으며 돈을 더 벌어 좋고, 나는 몸이 편하니 상부상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24시간 상주하는 헬퍼는 불편해서 싫다 했던 내가, 반대편 침실에 N이 자고 있으면 불편함은 커녕 든든하다.
익숙해지면 한 없이 편해지는 고용인과의 동거동락.
부족한 주방 살림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청결이나 위생의 기준이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매일 먹는 것도 걱정되어 망설여졌던 쿠커(요리사) 고용도… 이 참에 한 번 도전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