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구권 지폐같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
밤을 밝히던 불들을 하나, 둘 꺼뜨리고 저마다의 잠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 달콤한 꿈을 꾸겠지만
나는 다시 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이따금씩 경고등도 켜지 않고 깜깜한 밤이었던 내 마음 속으로 곧장 직진해서는
장난처럼 그 속의 가로등을 적어도 하나씩은 밝혀놓고는 했었지
일순간 환- 하고 빛이 깨어나던 그 순간은
혈관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필름 속에 그대로 인화되어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말았더랬다
그러나 네가 그런 장난을 멈춰버린 지금
내가 마음을 접는 것은 네가 밝혀두었던 그 무수한 가로등을
나 혼자 하나하나 꺼나가는 일
점점 영원한 암전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그러면서도
네가 웃을 때 나란히 찬연한 빛을 뿜어대던 두 초승달의 빛깔을
내가 쉽게 꺼뜨릴 수 있을 리가 없겠구나, 하고
그저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