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꿈을 안고 북으로 향한 국군과 UN군
11부에서 다룬 9.28 서울 수복은 패망 직전의 대한민국을 구한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궤멸되었던 북한군 주력 부대는 뿔뿔이 흩어져 북으로 패주하기 시작했고, 전세는 하루아침에 역전되었습니다. 이제 국군과 UN군은 38도선 앞에 섰습니다. 이 인위적인 경계선 앞에서, 그들은 전쟁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해야 하는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에게 38도선은 처음부터 존재해서는 안 될 '비극의 선'이자 '치욕의 선'이었습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북한 정권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진통일'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38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군은 UN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라도 북으로 진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며,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이다." - 이승만 대통령의 1950년 9월 말 담화문 中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과 UN의 결정과는 별개로, 국군에게 독자적으로라도 38선을 넘어 북진하라고 끊임없이 독려했습니다. 이는 UN의 작전 목표를 두고 고심하던 미국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반면, 미국 트루먼 행정부와 UN은 복잡한 계산에 빠졌습니다.
UN이 참전할 때의 명분은 UN 안보리 결의안 제83호에 명시된 대로 "무력 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 평화와 안보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전쟁 이전의 상태, 즉 38도선을 경계로 한 남북 분단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압도적인 성공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 기회에 침략자인 북한 정권을 완전히 제거하고, UN의 감시 아래 한반도 전체에서 자유 선거를 실시하여 통일된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중국과 소련의 개입 가능성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외교부장은 인도를 통해 "만약 미군이 38선을 넘는다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왔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이웃이다... 중국 인민은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 저우언라이, 1950년 9월 30일, 인도 대사 K. M. 파니카르에게 전달한 메시지
그러나 맥아더를 비롯한 현장 지휘관들과 워싱턴의 강경파들은 이를 '공갈(Bluff)'로 치부했습니다. 국공내전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중국이 세계 최강의 미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여력도, 의지도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과 국군은 먼저 행동에 나섰습니다. 1950년 10월 1일 새벽, 동부전선의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강원도 양양 북방에서 마침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국군 제1군단 전체가 동해안을 따라 북진을 개시했습니다.
UN의 공식적인 승인 없이 이루어진 이 독자적인 행동은, 38선 돌파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미국과 UN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끌고 가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훗날 대한민국 국군의 날로 제정되었습니다.
국군이 이미 38선을 넘자, UN도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습니다. 10월 7일, UN 총회는 미국이 주도한 결의안 제376호를 채택합니다.
이 결의안은 "한반도 전역에 걸쳐 안정된 상태를 확보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과 "통일되고 독립된 민주정부 수립"을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UN군의 38선 돌파를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이제 모든 족쇄가 풀렸습니다. 10월 9일,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미 제8군을 주축으로 한 UN군 주력 부대도 서부전선에서 38선을 넘어 평양을 향한 총진격을 시작했습니다.
북진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주력이 궤멸된 북한군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북으로 흩어졌습니다. 국군과 UN군이 도시에 들어설 때마다, 북한 주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나와 그들을 '해방군'으로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장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압록강에서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10월 19일,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마침내 북한의 수도 평양에 입성하여 점령했습니다. 김일성 정권은 이미 도시를 버리고 만주 국경 근처의 강계로 도주한 뒤였습니다.
평양 함락으로 통일은 이제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국군과 UN군은 서로 경쟁하듯 한반도의 끝, 중국과의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진격의 속도를 높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이라는 평생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환호하며 달려가던 그 순간, 압록강의 차가운 강물 속에서는 수십만 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소리 없이 강을 건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통일의 꿈에 부풀어 있던 국군과 UN군은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매복 작전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끝나기는커녕, 이제 막 가장 참혹하고 거대한 비극의 2막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