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의 도박과 전세를 뒤집은 결정적 한 수
9부에서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내며 대한민국을 궤멸의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공적인 방어였을 뿐, 전쟁의 주도권은 여전히 한반도의 90%를 장악한 북한군에게 있었습니다.
이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전세를 단숨에 뒤집기 위해, 한 노장의 머릿속에서 군사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무모한 작전이 구체화되고 있었습니다.
도쿄 다이이치 빌딩의 극동군사령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시선은 한반도의 허리, 인천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암호명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을 처음 제안했을 때, 미 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수뇌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지휘관이 경악하며 반대했습니다. 인천은 상륙작전을 펼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최악의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 극심한 조수간만차: 인천 앞바다의 조수간만차는 최대 9미터에 달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수준으로, 만조(滿潮) 때가 아니면 거대한 갯벌이 드러나 상륙주정이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상륙 가능한 시간은 한 달에 단 며칠, 그중에서도 하루 두 차례의 만조 시간 전후 몇 시간뿐이었습니다. 만약 상륙부대가 갯벌에 고립된다면, 적의 포화에 무방비로 노출될 '거대한 학살극'이 벌어질 터였습니다.
2. 좁고 위험한 수로: 상륙 함대가 인천항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비어(飛魚) 수로'라는 길고 좁은 수로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곳은 북한군이 기뢰를 부설하거나 해안포로 공격하기에 완벽한 '죽음의 골짜기'였습니다.
3. 높은 방벽: 인천항에는 모래사장이 없었습니다. 상륙 장병들은 상륙주정에서 내려 3~5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방벽을 직접 사다리로 기어올라가야 했습니다. 이는 방어하는 적에게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위험천만한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 해군의 한 작전참모는 이 작전의 성공 확률을 "5000분의 1"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의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반대하는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역사에 남을 연설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습니다.
"인천 상륙의 가장 큰 강점은 적이 바로 그곳으로는 상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 있소. 여러분이 제기한 바로 그 수많은 난점들이야말로 나에게 기습의 요소를 보장해 줄 것이오. ...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그들을 격파할 것이오! (We shall land at Incheon, and I shall crush them!)" - 1950년 8월 23일, 도쿄 극동군사령부 회의에서 맥아더의 연설
맥아더의 논리는 명쾌했습니다.
완벽한 기습: 상륙이 불가능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을 찌름으로써, 적의 허를 완벽하게 찌를 수 있다.
적의 심장부 타격: 인천은 수도 서울로 통하는 관문이다. 인천-서울을 장악하면 낙동강 전선에 쏠려 있는 북한군 주력부대의 보급로와 지휘 체계를 하루아침에 마비시킬 수 있다. 이는 뱀의 머리를 잘라 몸통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같다.
심리적 효과: 수도 서울의 탈환은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에게 엄청난 용기를, 북한군에게는 치명적인 심리적 타격을 줄 것이다.
결국 그의 확신과 카리스마에 눌린 미 합참은 마지못해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이제 5000분의 1의 도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D-Day인 9월 15일, 작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장사리 등 다른 지역에 양동작전을 펼쳐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킨 UN군은 마침내 인천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새벽 6시 33분 (Green Beach): 미 해병대가 인천항의 입구를 막고 있는 월미도에 기습 상륙했습니다. 치열한 포격과 공중 폭격 끝에 단 2시간 만에 월미도를 점령, 인천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오후 5시 33분 (Red Beach & Blue Beach): 두 번째 만조 시간에 맞춰 주력 부대인 미 제1해병사단이 인천 북쪽과 남쪽 해안의 방벽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방벽을 기어오른 해병대는 시가전을 벌이며 교두보를 확보해 나갔습니다.
맥아더의 예상대로, 북한군의 저항은 낙동강 전선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기습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서울 탈환: 상륙 13일 만인 9월 28일, 치열한 시가전 끝에 UN군과 국군은 수도 서울을 완전히 탈환하고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북한군 붕괴: 보급로가 끊긴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UN군과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반격을 개시하자, 퇴로가 막힌 북한군은 지휘 체계가 붕괴된 채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거나 항복했습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나라 전체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전세를 완전히 뒤집고 북진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군사학 교과서에 기록될 만큼 완벽한 기습이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지휘관의 위대한 결단이었습니다. 맥아더의 도박은 5000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대성공을 거두었고, 패배 직전의 대한민국을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승리는 지도자들에게 '전쟁을 곧 끝낼 수 있다'는 낙관론과 함께 '한반도 전체를 통일할 수 있다'는 새로운 야망을 심어주었습니다. UN군과 국군의 다음 목표는 명확해졌습니다.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 너머에는 이 전쟁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갈 새로운 강적, 중공군이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끝나기는커녕, 이제 막 가장 거대하고 비극적인 국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