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지키기 위한 필사의 혈투 (다부동, 포항, 마산 전투)
8부에서 다룬 스미스 특임대의 처참한 패배 이후, 국군과 미군은 계속된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7월 말, 전선은 한반도 동남쪽의 마지막 자연 방어선인 낙동강까지 밀렸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습니다. 지도상에 길이 230km, 면적 1만 km²의 작은 사각형, '부산 교두보(Pusan Perimeter)'만이 자유 대한민국의 마지막 영토로 남았습니다.
이 최후의 보루를 사수하기 위해, 1950년 8월, 한 달 내내 낙동강 유역은 인류 전쟁사상 가장 치열한 혈전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남쪽의 마산에서부터 낙동강을 따라 북쪽의 다부동을 거쳐 동해안의 포항까지 이어지는 'L'자 형태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유일한 보급항인 부산을 지켜내야만 UN군의 증원과 물자 보급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곳이 뚫린다면, 대한민국은 지도 위에서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모든 장병에게 다음과 같은 비장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우리 뒤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싸우다 죽는다. (There will be no more retreating... There are no lines behind us to which we can retreat... This is where we fight and die.)"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된 14만여 명의 국군과 UN군 장병들은 그야말로 배수진을 치고, 조국의 운명을 건 필사의 혈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8월, 북한군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한 총공세, 이른바 '8월 대공세'를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치열했던 격전지는 대구로 통하는 길목인 다부동이었습니다. 만약 다부동이 뚫리고 대구가 함락되면,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곳을 지키던 부대는 백전노장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이었습니다.
3개에 달하는 북한군 정예 사단은 국군 1사단을 향해 파상공세를 퍼부었습니다. 고지 하나를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는 혈전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볼링장(Bowling Alley)'이라 불린 유학산 계곡에서는 양측의 포탄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쉴 새 없이 오갔습니다.
계속되는 전투에 지친 병사들이 후퇴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백선엽 장군은 직접 권총을 빼 들고 선두에 서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우리가 여기서 밀리면 갈 곳은 부산 앞바다밖에 없다. 내가 두려움에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내가 앞장서서 돌격하겠다!"
장군의 솔선수범에 병사들은 다시 총을 잡고 적에게 맞섰습니다. 여기에 미군의 B-29 폭격기가 북한군 집결지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등 압도적인 공중 지원이 더해지면서, 국군 1사단은 기적적으로 다부동을 지켜내는 데 성공합니다.
방어선 동쪽의 포항도 위태로웠습니다. 이곳이 뚫리면 UN군의 주요 보급로인 동해안 축선이 차단되고, 부산이 동쪽에서부터 위협받게 됩니다.
북한군 제5사단이 포항을 향해 맹렬히 공격해오자, 국군 제3사단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이 포항 전투에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가 탄생합니다. 정규군 병력만으로는 부족하자, 교복을 입은 채 총을 든 학도병들이 전투에 투입된 것입니다.
포항여중에서는 71명의 어린 학도병들이 북한군 정규군을 상대로 11시간 동안이나 교사를 지키다 대부분 전사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 무서운 생각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 하지만 지금 제가 여기서 쓰러지면, 저의 조국과 사랑하는 부모님은 누가 지킵니까." - 이우근 학도병이 남긴 편지 中
어린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과 미 해군의 함포 사격 지원 덕분에, 포항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끝내 적의 수중에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방어선 서남쪽 끝,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마산에서는 북한군 제6사단이 낙동강을 건너 미군 방어선을 뚫고 위협적인 '낙동강 돌출부(Naktong Bulge)'를 형성했습니다. 워커 장군은 이 위기를 막기 위해 예비대로 아껴두었던 최정예 부대를 투입합니다. 바로 미 해병 제1임시여단이었습니다.
해병대는 투입되자마자 강력한 반격으로 낙동강을 넘어온 북한군을 격퇴하고, '전투산(Battle Mountain)'과 같은 요충지를 되찾았습니다.
이들의 용맹한 활약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분전 덕분에 방어선의 가장 취약했던 남쪽 측면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1950년 8월, 한 달간의 지옥 같았던 혈투 끝에 국군과 UN군은 마침내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냈습니다. 낙동강은 양측 군인 수만 명의 피로 붉게 물들었지만, 최후의 보루는 지켜졌습니다.
북한군은 이 '8월 대공세'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병력과 장비의 막대한 손실만 입은 채 공세종말점에 다다랐습니다.
** 공세종말점 : 공격 부대가 전투력, 보급, 병참 등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공격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지점
낙동강 방어선의 성공적인 방어는 단순히 대한민국을 구한 것을 넘어,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꿀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부산항에는 UN 회원국들의 지원군과 최신 무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방어전이 성공으로 끝나자, 맥아더 장군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대담하고 기상천외한 작전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시작합니다.
바로 전쟁의 모든 판도를 뒤집을 세기의 도박, 인천상륙작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