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의 피란민을 구한 현봉학 박사와 '메러디스 빅토리' 호
15부에서 다룬 장진호의 처절한 사투는 끝났지만, 전쟁의 비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지옥을 뚫고 나온 미 해병 1사단과 동부전선의 미 10군단 병력 약 10만 명은 이제 마지막 보루인 흥남(興南) 항구에 집결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군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공군의 진격 소식을 듣고 공산 치하의 삶을 피해 남쪽의 자유를 찾아온 약 10만 명의 북한 피란민들이 부두를 가득 메운 채 애타는 눈으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50년 12월의 흥남 부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습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피란민들은 최소한의 짐만 짊어진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끝없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공산 정권에 대한 공포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절박하게 서려 있었습니다.
당시 미 10군단 사령관이었던 에드워드 아몬드(Edward M. Almond) 소장은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의 최우선 임무는 10만 명의 병력과 막대한 양의 군사 장비를 안전하게 해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피란민까지 배에 태우는 것은 작전상 엄청난 부담이자 위험이었습니다.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운다는 것은 군 지휘관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한국인 민간인 통역관이자 의사였던 현봉학(玄鳳學) 박사가 아몬드 장군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자유를 찾아온 저들을 외면한다면, UN군이 이 전쟁에서 싸우는 명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저들은 단순한 난민이 아니라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우리의 동지라고 설득했습니다.
"장군님, 저 사람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우리를 믿고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저들을 저버리고 떠난다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기고도 지는 것입니다." - 현봉학 박사가 아몬드 장군에게 전한 호소
현봉학 박사의 간절한 설득과 눈앞의 참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아몬드 장군은 마침내 군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병력과 최소한의 장비만 실은 뒤, 배에 실려있던 모든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그 빈자리에 피란민을 태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철수는 12월 15일부터 시작되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까지 열흘간 필사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총 193척의 군함과 상선이 동원되어 병력 10만 5천 명, 차량 1만 7천5백 대, 그리고 야포 등의 군수물자 35만 톤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SS Meredith Victory)'호였습니다.
본래 60명 정원의 이 작은 화물선에 레너드 라루(Leonard P. LaRue) 선장은 무려 1만 4천 명의 피란민을 태웠습니다. 사람들은 화물칸과 갑판 등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간에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웅크렸습니다. 무기도, 난방도, 심지어 식수조차 부족한 절망적인 항해였습니다.
그러나 사흘간의 항해 끝에 12월 25일 성탄절,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을 때, 배에 탔던 1만 4천 명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모두 무사했습니다. 오히려 항해 도중 5명의 아기가 태어나, 사람들은 이들을 '김치 1'부터 '김치 5'까지 별명을 붙여주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복했습니다.
이 기적적인 항해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을 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12월 24일 오후, 마지막 피란민까지 태운 배들이 항구를 떠나자, 흥남 부두에 남아있던 미군 공병대는 적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항만 시설과 남겨진 군수물자를 폭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흥남 부두는 시뻘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이는 공산군에게 아무것도 넘겨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폐허 속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이들의 비장한 작별 인사였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은 군사적으로는 중공군의 공세에 밀린 후퇴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패배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한 지휘관의 결단과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은 10만 명에 달하는 피란민의 운명을 바꾸었고, 그들이 남쪽 땅에 뿌리내려 낳은 후손들은 이제 1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님 역시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 중 한 명이었습니다.
혹한의 절망 속에서 펼쳐진 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전쟁이 남긴 모든 상처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서사시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