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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을 넘는 반복, 배움을 만드는 흐름

다시, 또 다시. 그러나 다르게

by 김정락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말을 하고, 비슷한 고민을 되새긴다.

어떤 날은 안정감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날은 숨이 막히는 굴레 같다.


반복.

그 단어는 지루함이나 퇴보 같은 감정을 불러온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수천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피아니스트는 왜 지루해하지 않을까?

그는 매번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도, 그 안에서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듣고, 달라진 감정을 느낀다. 혹시 우리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건 반복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 없이 반복되는 무감각함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반복은 다시 보인다.

반복은 설계될 수 있다. 잘 설계된 반복은 몰입을 부르고, 기억을 깨우고, 나를 움직인다.

이런 반복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배움의 흐름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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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맥락 없이 반복되는 일들이다.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학습은 머리에 남지 않고, 마음에도 닿지 않는다. 교과서를 다시 펴고, 문제를 또 푸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뇌는 그런 반복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복이 기억을 만든다”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건 조건을 갖춘 반복일 때만 가능하다.


잊을 만한 시점에 다시 마주치는 정보.

새로운 맥락에서 반복되는 내용.

조금씩 달라진 난이도나 방식으로 접근되는 개념.


이럴 때 뇌는 “이건 중요한 정보다”라는 신호를 받는다.

반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다르게 보기, 의미 있게 다시 보기여야 한다.


좋은 선생님을 떠올려보자. 그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더라도 매번 다르게 들리게 만든다.

유머로, 사례로, 질문으로—그게 설계된 반복이다.

배움이 흐를 수 있도록 반복을 조율하는 기술, 그것이 학습을 설계하는 일의 본질이다.


어떤 개념은 잊을 만한 순간에 다시 등장하고,

어떤 정보는 다른 활동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어떤 질문은 기억을 꺼내 쓰는 힘을 끌어낸다.


그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패턴이 되고, 리듬이 되고, 기억된다.

반복의 질은 곧 배움의 깊이로 이어진다.

모든 반복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건 아니다.

어떤 반복은 무뎌지고, 어떤 반복은 깊어진다.

어떤 수업은 “또 그 얘기야?”로 끝나지만, 어떤 수업은 “이제야 알겠다”를 남긴다.

그 차이는 ‘얼마나 반복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반복했는가’에 있다.


나는 골프 연습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했지만,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고, 팔이 무거웠지만, 매 순간 내겐 ‘다시 해볼 이유’가 있었다.

손목의 각도를 바꾸고, 그립을 조정하고, 스윙의 타이밍을 느끼며 나는 매번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같은 동작 같았지만, 뇌는 그것을 다른 시도로 받아들였고, 그 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반복은 수치가 아니라 구조이고, 지루함이 아니라 감각이 살아 있는 리듬이다.

지금 내 삶에 반복이 많다면, 그건 성장의 징조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반복이 살아 있는가, 아니면 멈춰 있는가.


배움을 흐르게 만드는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몰입의 흐름이 된다.

기억은 반복 속에 쌓이지만, 변화는 설계된 반복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반복은, 우리 삶을 조금씩 움직이는 조용한 리듬이 된다.


반복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다.

반복은 나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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