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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장비빨로 버텨봅니다

by 김정락

골프 치트키? 물론 있다.

바로 내 지갑이다.


최신 드라이버, ‘스핀 죽이는’ 웨지, 공중에서 춤추는 고급 볼, 맞춤 맞춤까지.

지갑이 얇아질수록 내 장비는 강해졌지만, 스코어카드는 늘 솔직했다.

거기엔 내 소비 내용이 적히지 않으니까.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이 드라이버면 20m는 더 간다.” 되뇌며 골프장 잔디를 찢어지게 내려쳤다.

결과는? 공은 왼쪽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클럽은 프로인데, 샷은 여전히 아마추어다.

캐디가 옆에서 실소를 터뜨리는 소리가 귀 끝을 스친다.


라운드 날이면 상황은 비슷하다.

캐디들이 골프가방을 보며 “오늘은 프로님들 모시네” 하고 속삭인다.

하지만 중간 홀쯤 가면 표정이 살짝 굳어간다.

“프로는 무슨… 장비만 프로네.”

한숨 섞인 농담에 웃어야 할지, 땅을 파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다들 안다.

좋은 장비가 실력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도 새 아이템에 눈이 가는 건, 어릴 적 새 장난감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 때문이다. 내 안의 어린애가 잠시 꿈꾼다. 이 장비만 있으면, 나도 언젠간 멋진 샷을 날릴 수 있을 거라고.


결국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내 연습이다.

스스로에게 의심을 가져보는 일, 그 의심이야말로 나를 성장시킨다.

장비는 즐거운 착각을 주지만, 착각에서 깨어나는 건 내 몫이다.


오늘도 나는 내 드라이버를 닦으며 웃는다.

“그래도, 장비는 프로급이니까.”

하지만 웃음 뒤로 다짐한다.

다음 라운드에서는 내 스윙도, 마음가짐도 조금은 프로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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