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보다 오래 남는 감정
나는 샷이 늘 부담스럽다.
치지 못하는 건 아닌데, 그 순간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공 앞에 서면, 시간은 갑자기 느려진다. 머릿속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몸은 생각보다 느리다.
조금 전까지 웃고 있었던 얼굴이, 순간 정색한다. 어깨를 펴고 클럽을 들지만, 들뜬 심장 소리는 숨길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치기 직전의 시간’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
공을 쳤던 순간보다, 공을 치기 전에 들었던 소리. 숨을 고르는 내 호흡, 잔디 위를 스치는 클럽 헤드 소리, 동반자의 조용한 숨소리, 그리고 아무 말도 없는 바람.
그 몇 초 사이에 나는 내 안의 목소리와 싸운다.
“지금 잘못 치면 어쩌지.”
“스윙 모양이 예뻐 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낯설다.
그 순간 나는 골프를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내 자신감을 시험받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한 번, 정말 중요한 발표 자리에 섰을 때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고, 말을 꺼낸 뒤에도 나는 그 침묵을 잊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자리에 설 때면, 누군가의 시선보다도 ‘그 몇 초의 공백’이 더 두렵다.
샷을 준비하는 시간도 그렇다. 클럽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꺼내 보이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나는 그 마음을, 공 앞에서 가장 많이 들킨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하나 배운 게 있다.
그 잠깐의 떨림이 내 안의 가장 진짜 감정이라는 것.
그게 두려움이 든, 욕심이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든 간에 그 순간 나는 내 안에 숨은 마음 하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그 감정을 딛고 정말 괜찮은 샷을 날릴 때가 있다.
클럽에 맞는 소리도 좋지만, 사실은 그 전의 떨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샷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그날 라운드를 같이 돌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공 치기 전에 좀 달라 보여”
나는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공을 치기 전에 달라지는 나’ — 어쩌면 그게 진짜 내 모습인지도 모른다.
잘 치든 못 치든, 그 샷은 결국 지나간다.
그러나 그 샷을 준비하던 나의 마음은 오래 남는다. 공을 치기 직전, 나는 나를 가장 진하게 만난다. 그것만으로도, 이 스포츠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오늘 나는 공 앞에 또 섰고, 또 한 번 내 마음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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