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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것들

by 김정락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을 뚫고 세상에 나온 존재다.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로 선택되어 태어났으니, 인간이 숫자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나이, 점수, 연봉, 키, 몸무게, 집 크기, 자동차 배기량—우리는 셀 수 있는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고 비교하며 살아간다.


왜 우리는 그렇게 숫자에 집착할까? 숫자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기준이고, 우월감을 확인하는 빠른 도구다. 높은 점수, 많은 연봉, 낮은 체중은 우리에게 ‘나는 잘하고 있어’라는 착각 어린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정말 그 숫자들이 행복을 보장할까? 숫자는 잠시 위안이 될 수 있지만, 삶의 본질을 대신하진 못한다.


골프는 숫자에 민감한 스포츠 중 하나다. 타수, 버디, 파, 보기, 더블보기—모든 것이 기록되고 순위를 만든다. 프로는 순위로 상금을 받고, 아마추어는 내기에서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골프의 본질이 정말 숫자뿐일까?


골프장에서 “몇 타 쳤어?”라는 질문은 흔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웃음과 실망, 자책과 우쭐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좋은 스코어가 나오지 않으면 자신을 책망하게 되고, 타인과 비교하며 위축되기 쉽다. 숫자에 매달리다 보면, 라운드는 즐거움이 사라진 채 끝없는 경쟁이 되고 만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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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그 이상의 것을 품고 있는 스포츠다. 인내, 집중, 자신과의 대화, 동반자와의 우정, 자연과의 교감—이 모든 것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100타를 쳤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 안에는 실수를 극복한 용기, 자신을 다잡은 노력, 친구들과 나눈 웃음이 담겨 있다. 점점 백돌이(100타 치는 골퍼)를 벗어나는 기쁨, 어제보다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학교, 직장, 동호회에서조차 숫자와 등급으로 사람을 줄 세운다. 1등은 불안에 시달리고, 2등은 끝없는 추격에 내몰린다. 하지만 같은 숫자 안에도 서로 다른 눈물, 웃음, 좌절, 성장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숫자에 눈이 멀면 우리는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나이 역시 숫자일 뿐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 마음의 깊이, 품격은 숫자로 재단할 수 없다. 숫자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서열을 나누기 시작할 때, 숫자는 관계를 해치는 무기가 된다. 중요한 건 숫자 너머의 얼굴, 그 얼굴에 새겨진 시간과 경험, 철학과 관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숫자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숫자는 결과를 보여주는 표지판일 뿐, 여정의 전부가 아니다. 그 여정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숫자는 의미를 갖거나 공허해질 뿐이다.


골프에서 “오늘 80대 쳤어!”라는 말은 단순한 결산이다. 그 안에 담긴 노력, 배움, 즐거움에 눈길을 줄 때 우리는 숫자 경쟁을 넘어선 더 넓고 깊은 인생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하나다.

“나는 지금 왜 이 숫자를 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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