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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함이 사라진 날

by 김정락

이른 아침, 그린 위의 바람은 평소보다 한결 부드러웠다.

티잉그라운드에 서자,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기 없이 칩시다.”


그 한마디가 묘하게 긴장을 풀어버렸다.

마치 무겁던 배낭을 내려놓은 듯, 공기가 가벼워졌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어깨가 가벼워졌지만, 누군가는 어딘가 허전한 표정을 지었다.

첫 홀에서, 평소보다 스윙이 매끄러운 친구가 있었다.

그의 드라이버 샷은 힘들이지 않고 곧게 페어웨이를 뚫고 나갔다.


“역시 부담이 없으니 잘 되네.”


그 옆에서 누군가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작은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반대로, 집중이 풀린 사람도 있었다.

퍼팅 라인은 대충 읽었고, 러프에서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어프로치를 두 번에 나눠 쳤다.


“오늘은 재미가 없네.”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속에는 긴장감이 사라져 허전하다는 속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에게 내기는 승부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경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심리적 끈이었다.

목표를 놓치지 않게 당겨주는 장력,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무형의 줄.

그 끈이 팽팽할 때는 눈빛이 살아나고, 풀릴 때는 마음이 느슨해졌다.


카트에 앉아 잠시 쉬며 생각했다.

내기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사람의 마음을 팽팽하게 잡아주는 장치였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끈의 길이와 모양은 사람마다 달랐다.


아마 우리는 골프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적당한 압박’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승부가, 누군가에게는 목표가, 또 누군가에게는 관계가 그 역할을 한다.

긴장은 우리를 지금 여기에 몰입하게 하고,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날 라운드에서, 나는 두 가지 얼굴을 보았다.

끈이 풀리자 자유로워진 사람, 그리고 방향을 잃은 사람.


다음 라운드에서는 작은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절반은 내기하고, 절반은 하지 않는 것.

그 속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스윙, 그리고 관계 온도를 조용히 기록해보고 싶다.

그때쯤이면,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에 숨은 진짜 골프의 얼굴을 조금은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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