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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그 다리를 건넌다

안다는 것과 살아낸다는 것 사이, 그 느린 연습에 대하여

by 김정락

백스윙에 들어가는 순간, 어딘가가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각도도, 중심 이동도, 임팩트 타이밍까지 그려져 있는데—막상 몸을 움직이면 그 모든 게 희미해진다. 그리고 공은 내가 원한 방향이 아닌 곳으로 날아간다.


왜일까. 나는 이걸 이해했는데, 왜 몸은 아직도 낯설어할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질문이 자주 맴돌았다. 이해와 실행 사이, 생각과 행동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는 걸, 골프를 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그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식은 쌓였고, 머리는 분석했고, 영상도 수십 번 반복해서 봤다. 그런데도 내 몸은, 아주 자연스럽게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마치 새로운 시도를 ‘이상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뇌는 원래 새로운 걸 경계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익숙한 루틴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새 동작을 시도할수록 오히려 예전의 습관이 더 또렷해진다. 몸이 반항하는 게 아니라, 뇌가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다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알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마음은 변화를 원하지만, 몸은 변화를 의심한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이 모순—‘생각은 앞으로 가고, 행동은 제자리에 남는 상태’—는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괜찮았고, 또 어떤 날은 전혀 안 됐다. 스윙을 하다가 멈춘 적도 많았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동작은 더 경직됐다. ‘왜 안 되지’라고 묻던 시기를 지나,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받아들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뭔가를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그저 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만히 바라보려고 했을 때. 머리로 분석하지 않고, 몸에 생긴 감각 하나를 붙잡아보려고 할 때. 그런 날이면, 아주 작지만 분명히 다른 스윙이 나왔다.


나는 그 감각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한참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밤, 어떤 날은 샤워 후 거울을 보다가, 어떤 날은 자다 깨어서 핸드폰 메모를 켜고, 흐릿하게 남은 감정을 붙잡아 글로 적는다. 생각보다 부드러웠던 손의 위치, 의외로 낯설었던 무게감, 왜 그 순간 움찔했는지 같은 것들. 글을 쓰면 기억이 감각으로, 감각이 의미로 바뀐다.


그건 복습도 아니고 기록도 아니다. 어쩌면 그건, 내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작고 조용한 노력이다. 그 하루가 어땠는지를 놓치지 않으면, 다음 스윙은 조금 더 나아간다. 아주 조금씩이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려 한다. 몸이 따라오지 않을 때, 나는 아직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그렇게 받아들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늘의 스윙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전보다 단단했고, 덜 흔들렸다. 나는 여전히 그 다리를 건너고 있다. 생각과 감각 사이, 앎과 삶 사이에 놓인 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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