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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생각만큼 행동도 깊어져라

머리만 커진 가분수

by 김정락


나이, 즉 연배가 있는 분들은 “모여라! 꿈동산”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이 인형 탈을 쓰고 나온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때 당시 인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인형의 머리가 아주 커서 가분수, 또 그 당시 머리 큰 사람을 부를 때 “모여라! 꿈동산”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놀이동산에 가면 인형 탈을 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데요, 인형 머리가 커서 불편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써 본 적이 없어 잘 모릅니다.

우리 삶에서 머리만 커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느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고, 서 있지 못하면 걷는 행위도 힘들어지겠지요. 움직이지 못하면 몸에 이상 신호가 오면서 아픈 곳이 발생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활기찬 삶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균형을 잃고 죽은 인생을 살며 숨만 쉬며 겨우 연명하는 것이지요. 생각만 해도 서글프고 비참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 멋져 보이지 않나요? 인문학이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가장 지적인 삶이지요. 이 삶에서 누군가는 지식을 쌓으며 깨달음을 얻고 누군가는 지식만 쌓는 행위만 하게 됩니다. 깨달음 없이 책 읽는 자체만 즐긴다면 지적 유희 활동하는 사람이겠지요. 깨달음도 깨달음에서 멈추면 그것도 머리만 커지는 가분수 형태를 만드는 또 다른 지적 유희의 놀이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깨달음이, 지식이, 마음에서 다리로 옮겨지는 실천이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계발서 및 책을 많이 읽어도 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실천, 행동’ 말이죠.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요즘 더 절실하게 그것을 느끼는 중입니다. 유튜브, 책에서 공통으로 말하는데요, 그들의 말을 읽고 듣고 ‘과연 나는 책을 읽고 실천하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선택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깨달음 중에 비교적(?) 쉬운 행동은 지키려고 하면서도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어렵거나 힘든 행동은 피하고 있더라고요. 종합적으로 볼 때 실천했다고 볼 수 없는 실천이지요.

실천하지 않는 행동은 ‘경제, 부’와 관련된 행동입니다. 경제적 자유와 캐시플로우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책에서 어떤 방법, 비법에 관한 책을 읽어봤지만, 저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지요. 자신에게 적용해 맞게 변형시켜야 하지만 경험도 없고 기본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저에게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습니다. 수백억 자산가가 유튜브에서 “레버리지” 책을 읽고 자기는 거기서 영감을 얻어 지금의 자산가가 되었다고 했는데요, 저도 그 책을 읽었지만, 결과가 다릅니다.


저 자신은 가분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즉 ‘모여라! 꿈동산’이죠. 저 자신만 모르고 있었어요. 책을 읽고 생각이 많아져 예전보다 보지 못했던 부분, 안 보이는 부분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이면을 보는지, 통찰이 생겼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부분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건데요. 이 부분이 주변에 사람과 마찰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안 보이는 부분이 보이다 보니 짜증이, 불만이, 더 많아졌나 봅니다. 솔직히 스스로는 몰랐고요, 옆에서 이야기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어느 쪽이든 성장을 했나 봅니다. 미약하지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요. 지식, 통찰, 안목 등 한쪽으로만 집중되어서 커져 버렸나 봅니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으려고 했고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물론 집중적인 다독과 글쓰기가 잘 된 것은 아니지만 성장하고 쉽다는 생각에 치열하고 간절하게 매진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계속 책을 보고 있다고, 글을 쓴다고 일취월장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서 성장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스스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상황은 미세하게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포기해야 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어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자신이 가분수가 돼서 한쪽으로 치우친 문제로 가족과 소통 부족의 문제가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저의 능력 부족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마음도 매우 불편한 상황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양쪽을 맞추고 싶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가족에게 두고 하고 싶은 것은 쪼개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에 쪼들리거나 힘들다고 우선순위인 가족에게 소홀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 해 보고 싶은 일이 많아지면서 환경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왜 이제야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답답합니다. 누구 잘못을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겠지요. 사람인지라 하고 싶은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또 안 했던 것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한편 이 과정이 진정 나를 알아가게 맞는지 궁금합니다. 단지 과거에 못 해 본 그것에 대해 아쉬움을 채우려고 하는 욕심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하고요. 경제적인 부분이 걸려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도 듭니다. 돈이 쏟아져 나온다면 누가 말리겠습니까. 말리지 않고 열심히 하라고 부추기겠지요. 항상 이야기하지만, 딴짓해 봐야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게 아닐까요? 젊을 때 해야 했는데, 지금 하려고 하니 환경이 걸리네요.

삶은 살수록 어렵습니다. 제가 바보 같아서 보지 못하던 시절, 안 보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모르면 편안하겠지요. 생각해 보면 마냥 즐거운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은 자신이 답답해했죠. 손에 쥐고 있는 끈을 놓으면 편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상태로 살아가겠지요. 그래서 과거에 계속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말입니다. 과거 삶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현재를 잘 다듬어 가고 싶습니다. 상대에게 순간순간마다 맞는 카드를 내밀면 문제가 없겠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격차를 줄이는 게 최선이고 그쪽에 맞는 카드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요. 양쪽에 완벽한 카드는 없으니 말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좋지만 지식이 쌓이면서 가슴은 자꾸 답답합니다. 이것도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모른 채 흘려보내지 않고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겠지요. 우리 가족이니 말입니다. 생각에 휩싸여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게 의심하고 검열이 필요합니다. 판단도 함부로 내리지 말고, 만족도 지연시켜 생각의 깊이만큼 행동도 깊은 행동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해서 연결되지 않아 괴롭습니다. 제이컵 브로노프스키(1908~1974년)는 “세상은 행동으로만 파악할 수 있으며, 사색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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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분수 #생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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