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욕구, 욕망
*골프로 인간 무늬를 그리다 매거진은 화, 목, 토 오전 11시에 발행합니다.
내 삶은 정지되었습니다.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잠은 잘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멈춘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이 잠깐이라도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하고 싶은 게 많은데요. 먼 과거는 아니지만 몇 시간 전이라도 돌아가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했던 말을 더 순수하고 불편하지 않게 수정해 머리에 새기고, 행동은 이 방향이 아니라 거기, 저 방향으로 가게 하고 싶습니다. 순간, 순간 어리석은 판단으로 마음이 괴롭습니다.
인생에서 욕심, 골프에서 욕심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골프는 상대를 경쟁자로 부르지 않고 동반자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신사적인 스포츠를 강조하는 골프 문화가 조성된 이유이고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또 존중, 배려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경쟁을 통해 순위 즉, 서열화시킵니다. 사회 집단 생활은 경합하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익숙하지요. 그래서 골프 경기에서도 놀이(내기)를 통해 확인하죠. 그 안에 돈과 경쟁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다 보니 일이 발생한 거죠.
동반자를 이겨보겠다는 욕심에 규칙을 깐깐하게 적용한 것입니다. 규칙이라는 명목하에 욕심을 숨기고 이익을 추구하려 한 행동이었습니다. 불필요한 말, 행동 담을 수 없고 돌릴 수도 없는 생각하기조차 하기 싫은 장면이었던 거죠. 이율배반적으로 두렵고, 불안해하면서 욕심, 욕망이 앞에 서면 자신의 본성이 튀어나와 가식을 걷어 내니 말입니다. 골프가 신사적인 스포츠이지만 이면에는 자기를 꿰뚫는 통찰로 쓰리게 하면서도 성장도 시켜줍니다.
저는 욕심, 욕구, 욕망이 없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본성입니다. 사실, 그 마음이 없어서 문제라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기 이익이 관여될 때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에게도 이 감정이 있구나! 정지되고 죽어있는 삶은 아니었구나’라고 말이죠.
인간은 누구나 욕심, 욕구, 욕망을 품습니다. 욕심, 욕구, 욕망이 나쁠까요? 나쁘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타인의 배려와 나눔 없이 자신만 생각하면 그렇겠지요. 그러나 자기에게 없는 무엇을 채우려는 행동이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내 안에 꽉 들어차야 밖으로 배출하고 그것이 배려와 나눔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내가 아무것도 없는데 쏟아낸다는 것은 악감정을 분출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배려와 나눔은 자신이 성공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공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나름에 심판을 받지 않겠습니까? 이 상황을 제외하면 자기 부족함을 채우려는 마음, 성장을 위한 욕심, 욕구, 욕망은 꼭 가져야 하는 자세입니다. 중요한 쟁점은 양극으로 비춰볼 때 넘쳐도, 부족해도 문제가 발생하듯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면 삶에서 구멍 나게 되겠지요. 욕구가 생기면 선한 방향으로 채우고, 넘쳐 탐욕으로 흐르게 되면 비워버리는 중용적인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감정이 없다고 단정 짓고 살았으니 있는지, 없는지 몰랐으며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죠. 창조주가 준 인간 본연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거나 회피한 것입니다. 이것도 악을 행하는 행동이죠. 감히 신이 준 것을 사용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마음의 절름발이 인생과 마찬가지예요. 생각해 보세요. 필요 없으면 애초부터 주지 않았겠죠. 마치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사명이 있듯 이 감정도 쓸모가 있어서 하사(下賜)한 겁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스스로 판단해 오류를 범했고 즉, 내 안에서 막고 버린 것입니다.
이 태도가 저의 발전을 저해시켰다고 봅니다. 자신을 알아가는데 자기 개념화를 잘못시킨 거죠. ‘아! 나는 욕심, 욕구, 욕망이 없는 사람이구나.’로 규정하고 감정을 가지면 안 되고 말입니다. 자기 절제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만 절제가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옥죄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욕구, 욕망하는 마음을 꽉꽉 누르고 살았으니 말입니다. 가슴이 치밀어 오르는데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숨기려 하니 내장은 썩어 문드러지고 날카로움 비수가 심장 속을 깊지도 얕지도 않게 아리게 그어 숨을 턱 막아버립니다.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속마음은
갖고싶고,
쟁취하고,
기대하고,
갈망하고,
품고싶고,
심지어
좇고싶은 욕구와 욕망이 충돌했던 것입니다.
작은 일이었어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데 잠시 사사로운 욕심이 생긴 거죠. 시력이 좁아져 넓게 보지 못하고 사익을 챙기려고 했을까 후회합니다. 평소,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세상 어떤 욕심도 없는 듯하면서 대단찮은 일로 돌변해 버린 제 모습이 싫습니다. 이 모습이 저에게 시련과 역경을 주는 걸까요? 오그 만디노1)는 “역경은 저주가 아니야. 그것을 축복이야. 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들은 역경의 용광로에서 시련을 받았던 사람들이야. 한 번도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 거야, 툴루.”
정확히 지금 이 생각과 행동이 오그 만디노가 말하는 시련과 역경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경험입니다. 이런 작은 감정이라도 민감해야 진짜 나를 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들어오는 감정을 말입니다. 알아야,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2)에서 구하면 구할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고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 두근거림, 편안하듯 들러붙어 있어 느끼지 못하는 불안함, 미세하고 반응조차 없는 떨림에 집착해야겠습니다.
시간이 멈췄다는 것은 불행을 말합니다. 그만큼 자기 인생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삶에서 갖고 싶고, 원하는 일이 없다면 살아있는 걸까요? 죽은 삶입니다. 행복도 없고, 무미건조한 삶의 연속일 겁니다. 나를 알아야 불행한지, 행복한지 인지하지 않겠습니까. 무지하면 알려고 힘써야 하지 있는지, 없는지 방치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욕구든, 욕망이든 커야 합니다. 깨져도 욕구와 욕망이 커야 큰 조각으로 큰 꿈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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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바의 선물. 오그 만디노. 백기완 역. 1992
2)누가복음, 11장 9절~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