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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락 Mar 02. 2023

부서진 양심

*골프로 인간 무늬를 그리다 매거진은 화, 목, 토 오전 11시에 발행합니다. 


작고 하얀 볼을 세게 발로 찼다. 그리고 그는 나무 아래에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춰들면서 선글라스 사이로 그의 눈빛을 본 순간 살짝 섬뜩하면서도 만족하듯 입과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 아마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안도의 비열한 웃음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으며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그도 주위 눈치를 살피느라 나를 보지 못했다. 다가오는 나를 발견한 그는 웃으며 볼이 안전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팔뚝과 목 사이를 타고 소름이 돋았으며, 치졸함은 등줄기를 타고 나를 양쪽으로 갈라놓듯 그에 대한 진심도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변호사다. 개인적으로 자문하고 일도 맡겼다. 그는 뽀얀 얼굴의 순수함으로 말투는 언제나 나긋나긋 녹는 목소리로 항상 다정다감하게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듯했다. 직업 때문이었을까? 특히 남의 부당함, 억울함, 절실함, 간곡함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어긴다는 게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골프 규칙은 손, 발로 공을 절대 움직일 수 없고, 티샷과 그린에 올라온 볼만 만질 수 있다. 규율을 철저히 지킬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평소 그가 나에게 대하는 말과 행동에서 진심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믿음과 진심이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그에 대한 인간 본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단순히 볼을 발로 찬 행동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다. 스트레스 풀고 재밌게 하루를 보낼 마음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골프 규칙은 자신이 정한 원칙과는 다르다. 자기 원칙은 순서를 바꾸어도 괜찮겠지만 스포츠 규칙은 꼭 올바르게 지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마음대로 변경하고 깨뜨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합의된 규칙이 없다면 세상은 혼란이 일어난다.      


그럼, 나는 양심적이었을까? 자유롭지 않다. 악마는 항상 우리를 유혹하게 마련이고 나약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살짝 옮겨도 괜찮겠지, 보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행동을 누가 보지는 않을까 혹여 누가 볼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조급함에 심장박동이 빨라져 손은 부들부들 떨려 진동이 전해질 뿐 아니라 육안(肉眼)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부서진 행동을 감춰보려고 양손을 꽉 잡고 재빨리 스윙하지만, 오히려 볼을 정확하게 맞히지 못한다.      


나는 양심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단순하게 말하면 나를 속이는 것이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정하는 기준이다. 양심에 대해 조금 깊게 보자면 자기 자신하고 약속을 지키는 행동을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1)에서 ‘남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용서하지 말라(푸블리우스 시루스).’ 신독을 말한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아미엘2)은 신이 인간에게 세상을 아름다운 균형을 위해 신이 간절히 부탁한 신탁을 양심이라고 했다.     


골프계 가장 위대한 선수 바비 존스은 신독을 가장 잘 지켜낸 선수다. 그는 마지막 날 우승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공을 치려는 순간 잔디를 건드려 볼이 움직였다. 경기위원에게 사실을 알렸고 경쟁자도 보지 못했고 실제 움직이지 않았을 수 있다며 그대로 경기를 진행하자고 했다. 하지만 바비 존슨은 벌 타를 받고 연장에서 패배했다. 그는 우승보다 자신을 속이고 비열한 행동은 없다고 판단했으며 멋진 명언을 남겼다. ‘은행을 털지 않은 일이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정해진 규칙뿐만 아니라 양심, 더 나아가 신독, 자신과 신의 약속인 신탁을 지킨 것이다.     


양심을 부서뜨리면      

규칙을 훼손하고

행동을 비난하고

환경을 거스르고

세상을 저버리고

타인을 비난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양심은 간직하고 있었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밀어 넣고 외면했다. 그리고 겸손한 척 굴었다. 옳고 그름, 선악의 길을 구분 못 하면 구렁텅이로 빠져 한순간 나락 해 마음을 져 버리게 되었다. 선의 길에서 벗어나 악의 길로 접어들면 비겁함을 넘어 자칫 비루하게 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3)당신의 일부가 죽어야 한다.’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다. 즉, 자신의 과대 포장지를 벗어던지고 비겁해지지 않으면 한다.     


양심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에게 엄중한 잣대로 신독을 지키면 양심을 거론할 일이 없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도덕, 윤리를 꼼꼼히 따지고 살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세상이 만들어 낸 제도를 지켜야 한다. 사회에서는 사회 규범을 지키고, 학교에서는 학교 규칙을 지켜야 원만하게 움직인다. 가장 기본인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자기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과 욕심으로 명예욕에 다가간다. 우리가 영광에 도달하는 길은 양심에 충실히 하는 일이다. “4)양심이 자신에게 해 주는 악덕과 도덕의 증명은 한층 더 막중하다. 이것을 제거한다면 전부가 와해된다.”(키케로) 실로 무서운 말이다. 양심이 무너지면 인간 본성 자체가 파괴된다. 지금의 성찰이 더 큰 선을 지키도록 잘 판단해야겠다. 그래서 인간의 조화를 위해서 신이 부탁한 것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나는 양심을 지키기로 했다.


#양심 #톨스토이 #인생이란무엇인가 #아미엘 #신독 #신탁 #규칙 


1)인생이란 무엇인가. 레프 톨스토이. 채수동 옮김. 2021.

2)아미엘 일기. 아미엘. 민희식 역. 2003

3)질서 너머. 조던피터슨. 김한영 역. 2021

4)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손우성 옮김.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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