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본 영화 <식물도감>
산달래파스타, 산딸기케이크, 따끈따끈한 머위 밥, 호장근볶음까지.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식물도감>에 등장하는 음식을 보면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모리 준이치 감독)의 도시버전 같다. 깊은 산을 올라가 산나물을 캐는 장면은 없지만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돌아다니면서 채취한 나물로 요리를 장면에서 <리틀 포레스트>가 겹치는 것은 당연하다. 토호쿠 지방 음식이라는 머위 된장이 나오는 장면도 그렇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가 토호쿠였다. 이렇듯 <식물도감> 역시 자연의 냄새가 스크린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 작품은 여기에 다양한 식물과 사랑을 더한다. 두 남녀 주인공이 식물을 보고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스크린은 생기가 돈다. 마치 근교에 소풍을 간 것처럼.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는 사야카(타카하타 미츠키)에게 일상은 무색에 가깝다.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부지기수다. 혼자 사는 사야카가 지친 몸을 집으로 끌고 와 먹는 음식은 즉석도시락이다. 사야카에게 한줄기의 빛이 도달하는 건 우연히 이츠키(이와타 타카노리)를 만나면서다. 배가 고파 길 한 모퉁이에 쓰러진 이츠키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전날 밤 일이 꿈속이라고 느꼈던 사야카는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츠키가 아침에 차려준 음식은 따끈따끈한 미소시루(된장국). 모처럼 온기라는 걸 느낀 사야카는 떠나려는 이츠키를 붙잡는다. 그렇게 두 남녀의 갑작스런 동거가 시작된다.
사야카의 일상은 변한다. 식물을 잘 아는 이츠키와 함께 직접 딴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츠키가 싸준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회사에서 먹는 재미도 있다. 사람의 온기가 담긴 음식은 누군가에게 안정과 행복을 준다. 도시락을 열 때마다 기대에 찬 사야카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그렇게 일상의 행복을 느낀 사야카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다. 영화는 사야카의 회식 자리를 통해, 그의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야카가 평소 먹던 꼬치가 짜다고 느낄 때다. 힘든 삶에 찌들어있었다면 사야카가 이츠키를 만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의미다.
이 작품은 서로에게 애틋함을 느낀 사야카와 이츠키가 관계가 동거에서 연애로 발전하면서 일상의 행복을 한 단계 확장한다. 다만 로맨스는 이 영화에서 부스러기 같은 느낌이다. 사랑→갑작스런 이별→재회라는 상투적인 로맨스의 공식을 다뤄 힘이 빠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 내내 펼쳐지는 싱그러움과 따뜻한 자연의 공기는 유지된다. 또, 자기 자신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정도로 여유가 없던 사야카의 내적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삶을 마주했을 때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최근 개봉한 <식물도감>은 흥행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큰 반전이 없는 일상이 배경이고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의 경력이 두텁지 않은 것이 이유다. 그럼에도 <식물도감> 같은 영화는 필요하다. 세상의 수많은 사야카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을 준다. 이렇게 큰 반전이 없는 일상을 접할 시간도 필요하다. 영화 상영시간 동안만이라도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이 아닐까. 작품은 아리카와 히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