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를 기억하고 류현진을 바라본다

by 김진수

한 시즌 234닝 소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라고 불리는 클레이튼 커쇼(LA다저스)의 성적이 아니다. 2001년 박찬호(당시 다저스)가 던진 이닝이다. 최근 5년 중 한 해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커쇼로 2015년 232.2이닝이니 당시 박찬호가 많이 던지긴 했다. 당시 박찬호의 234이닝이 내셔널리그 3위에 기록이었으니 그 당시 뛰어난 ‘괴물’들이 많았던 셈이다. 물론 박찬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 해 최종 성적은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 탈삼진은 218개로 내셔널리그 3위에 올랐다.

그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스포츠신문이 잘 나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1998년 박찬호가 당시 개인 최다인 15승을 거뒀을 때, 나는 그 사실을 학교를 가던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들고 보던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 정말 ‘15’라는 숫자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으니까. 박찬호는 한 때 나의 우상이기도 했다. 1997년 14승을 거둔 그는 1998년 15승, 1999년 13승을 거뒀고 2000년 아시아 최다인 18승을 기록했다. 2001년 한국인 최초로 올스타전에 나갔던 그는 15승을 거뒀다.

90년대 말에는 TV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긴 어려웠지만 2000년대가 되면서 MBC를 통해서 박찬호의 경기를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그 때 처음 허구연 해설위원이 누군지도 알게 됐다. 그 때는 박찬호의 온갖 기록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승리를 해도 실점을 적게 해서 평균자책점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길 바랐고, 다저스의 불안한 불펜진을 보며 박찬호가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가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순간은 2001년 배리 본즈에게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내줬을 때다. 당시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경기였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집에 후다닥 뛰어왔을 때, 이미 박찬호는 본즈에게 홈런을 하나 내준 뒤였고 나는 연타석 홈런 맞는 것을 두 눈으로 봐야했다.


박찬호는 2002년 텍사스로 이적했다. 파란색 유니폼만 있던 그의 유니폼은 어색했고 성적은 다저스 시절만큼 나오지 않았다. 강속구를 뿌리며 강렬했던 그의 이미지는 긴 시간 동안 꺾였다. 이를 악물고 던져도 150km의 강속구를 보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한 때 잊혀진 인물이 되기도 했다.

훗날 그의 부활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보게 됐다. 다저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중간계투로 나서 150km 중반 대 공을 던지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는 조금 더 던져 2010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동양인의 최다 승수인 124승(98패)는 그렇게 탄생했다.

사실 박찬호의 기록이 엄청나다고 새삼 느낀 건 몇해전 그의 옛 성적이 궁금해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다. 한 시즌에 200이닝 넘긴 것만 세 번이었고 내셔널리그 10위 안에 드는 ‘닥터K'였고 최저 피안타율 3위 내 든 것만 해도 세 번이었던 위대한 선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런 세부적인 기록 하나하나 다 알지 못했다. 그저 당연히 10승은 하는 투수였던 박찬호의 위대함을 뒤늦게 느끼게 된 것이다.

류현진의 올 시즌 활약에서 옛 박찬호가 떠오른다. 중간에 부진은 있었지만 평균자책점 1점대를 유지하며 ‘게임 같은’ 시즌을 만들어낼지 기대감을 줬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투수에 오르는 영광도 있었다. 전반기에 거침없이 달려 20승을 기대하게도 만들었다. 나의 매우 큰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는 14승(5패)를 거두면서 평균자책점 2.32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아시아 투수 역대 평균자책점 1위의 대기록이다.


그가 올해 던진 182.2이닝도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팀 내 1위이자 내셔널리그 13위이다. 류현진이 사이영상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류현진의 기록도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그 어떤 순간보다도 대단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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