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배우 강말금
“저와 비슷한 동시대 여성을 그린 영화의 모델로 나왔다는 게 기뻤어요. 이 시대 많은 여성의 얼굴이기도 하고요.”
26일 만난 배우 강말금(41)이 수줍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강말금은 3월5일 개봉하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에서 주인공 찬실로 등장한다. 나이 마흔에 갑작스럽게 실직한 영화 프로듀서다. 일도, 연애도 못하는 찬실이가 주변인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다는 이야기다.
“제가 마흔 살 여자를 연기했어요. 결혼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이 했지만 앞으로도 이걸 해야 하는지 그런저런 생각을 찬실이처럼 했었어요. 그런데 이런 여자들이 제 주변에 많더라고요. 이런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에 주인공이 돼서 좋았어요.”
영화 속 찬실은 돈은 없고 마땅한 직업도 없지만 자존심은 남아있다. “현실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라며 자신을 해고하려는 영화사 대표 앞에서는 “현실이 뭔데요”라며 은근히 따진다. 관심 있는 남자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가 심심하다고 하자 “심심한 게 뭐 어때서요? 본래 별게 아인 게(아닌 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라며 강렬한 손짓과 함께 흥분하기도 한다. 그의 순박한 표정과 사투리가 절묘하게 어울려 캐릭터를 살린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특히 명대사들이 많았죠.”
장편영화의 첫 원톱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12년이 걸렸다. 그는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안했다. 너무 멋있는 일이지 않나. 20대의 젊은 배우들은 키가 크고 날씬해서,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이) 꿈만 같은 거다”고 말했다.
부산의 경남여고 시절 교내 연극반에 들어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하던 평범한 ‘문학소녀’였다. 대학도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이던 때 연극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연극반을 지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고2 선배들이 다 그만뒀다는 게 이유였다. 대학 생활 내내 후배들과 연극을 했다. 자문을 구하러 교내 극예술연구회를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낌이 왔다. “연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아, 하고 싶다’ 싶었죠.”
하지만 졸업 후 그의 첫 사회생활의 시작은 한 물류회사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일은 잘하지 못했다. 마음은 배우로 기울어져 있었다. 무기력한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직장 상사의 도움으로 본사가 있던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독립을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나이 서른, 배우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극단 수레무레에 들어갔다. 인형극 <어린왕자>를 보고 김태용 연출에게 “저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을 받아줄 수 있을까요.”라며 메일을 보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서른 살에 그림을 시작했다”며 그를 받아줬다. 그곳에서 연기를 배우면서 연극배우로서 조금씩 영역을 넓혔다. 스무 편이 넘는 크고 작은 연극에 출연했다. 2010년에는 전인철 연출의 도움으로 연극 <순이삼촌>에서 조연출을 했다. 이정은, 황석정, 박지환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작은 단편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던 마흔 살이던 2017년 만난 영화가 <자유연기>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작품. 강말금은 이 영화에서 3분 여 동안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 중 니나의 독백을 강렬하게 소화했다. 2018년 정동진영화제에서 우연히 이 작품을 본 김초희 감독이 이 장면을 인상 깊게 보고 강말금에게 <찬실이도 복이 많네> 출연을 제안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필연적으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배우로써 어떤 작품을 책임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라며 “그런 경험을 해야 배우의 실력이 늘어난다”고 했다.
배우로 살면서 복이 많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인복(人福)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극단에서 저를 받아주셔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시거나 만났던 최고의 배우들…저는 빚쟁이에요. 이제 좋은 마음으로 작업해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중복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