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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Mar 13. 2020

누구와 연애해도 괜찮아, 가영이니까

거침없이 직진한다. 도대체 솔직하지 않은 구석이 어디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능청스럽고 자유롭다. 1990년생 정가영의 영화는 말랑말랑하다. 그는 영화를 통해 연애의 경계를 깨뜨린다.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는다. 연애 그 자체를 보여준다. 성(性)에 대해서도 자유분방하게 표출한다. "누구와 잠을 잤냐"는 대사가 자주 오가고 '자위'라는 단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던져진다. 모든 걸 꺼내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정가영 감독의 <하트>도 연애에 있어 상식이 무너진 상황에서 출발한다. 유부남을 좋아하게 됐다는 가영은 가영(정가영)은 유부남 성범(이석형)을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 가영을 쳐다보는 성범은 퉁명스럽다. 알고 보니 가영과 성범은 예전에 불륜 관계였던 것. 장난기가 살짝 묻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가영, 어딘가 꺼림칙한 남자 주인공, 한쪽은 구애하고 한쪽은 거부하다가도 결국에는 한 몸이 되어버리는 지질한 이야기까지 이 영화는 정 감독이 이전에 그린 작품과 닮았다.

가영은 사랑을 일종의 모험이라고 비유하며 모험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부남을 좋아하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인지,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인지 영화 속에서는 구분되지는 않는다. 어떤 감정을 굵은 선에 따라 선명하게 긋기란 힘든 법이다. 하지만 관객은 깨닫게 된다. 가영은 자신이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사랑이나 일을 그토록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의 제목이 <하트>인 것처럼 말이다.
                 

2월 27일 개봉한 정가영 감독의 영화 <하트>의 한 장면. ⓒ 필름다빈


 정가영이라는 이름을 알린 두 영화


< 하트>는 정 감독의 앞선 두 작품의 연장선이다. <비치온더비치>(2016)에서는 얼굴만 봐도 장난기 가득한 여자 주인공이 나와 헤어진 남자친구 집을 다짜고짜 찾아간다. 남자를 만난 그는 갈구한다는 듯이 부탁한다. 자기랑 '한 번 할 수' 없는지. <밤치기>(2017)에서 여자 주인공은 아는 오빠를 만난다. 가장 먼저 물어보는 말이 "하루에 자위는 몇 번 하느냐"이다. 술잔이 몇 차례 오가고 취기가 살짝 오르자 그는 오빠에게 "오늘 밤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라고 쑥스럽게 묻는다. 이 오빠는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말이다!


파격적인 장면보다 인상에 남는 건 두 주인공 간의 대화다. 물 흐르듯 쉬지 않는 두 주인공 간의 대사 안에는 온갖 질투와 사랑, 노파심 등이 섞여 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터지는 웃음도 귀에 꽂힌다. <비치온더비치>에서 두 주인공이 라조기를 먹는 장면에서 "막, 안 서고 그때!" "내가 언제 안 섰어.", 그때!" <하트> 뿐 아니라 앞선 두 작품 속 여자 주인공 모두 정가영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 현실감이 짙은 이유다. 관객은 작품의 엉뚱함에 반하면서 동시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비치온더비치>와 <밤치기> 두 작품이 정식 개봉해 모은 관객은 합쳐 3582명. 각종 영화제와 언론은 신선한 독립영화에 주목했다.


정 감독의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도발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그간 영화에서 남성에게 먼저 접근하고 이야기를 꺼내고 관계를 리드해 나가는 여성 캐릭터를 그려왔다. 청순가련하거나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여러 연애물 속 여성과는 다르다. 정 감독의 작품 속 여성은 남성에게 적극적인 것을 넘어 때로는 대놓고 들이대기까지 한다. 외로움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한국 영화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이 괴리한 상황에서 관객은 낯설면서도 재미있게 묘한 감정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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