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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Mar 25. 2020

숨 막히는 위협… 무서운 건 사람인가, 악령인가

[리뷰] 영화 '온다'

ⓒ트리플픽쳐스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온다>(감독 나카시마 테츠야)는 눈에 보이는 공포와 보이지 않는 공포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관객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무서움의 정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악령인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인지 질문을 던진다. 실체를 쫓던 관객은 덩달아 혼란에 빠진다. 134분이라는 시간 동안 숨 막히는 위협에 쫓기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어떤 것도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걸.

  
히데키(츠마부키 사토시)는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안정된 회사에 다니며 해사한 카나(쿠로키 하루)와의 결혼에도 성공했다. 근사한 맨션을 구했고 사랑스러운 딸 치사도 얻었다. 히데키는 남자도 육아를 해야 한다며 주말에 부부학교에 나간다. 블로그를 만들어 육아일기도 쓴다. 모든 걸 갖춘 완벽한 남자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섬뜩한 목소리가 히데키와 그의 가족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것'. 초자연적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며 히데키는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인간은 가식의 동물이기도 하다. 호의와 선의라는 껍데기 속에는 실제로 수많은 이기심과 뒤틀린 욕망, 질투가 담겨 있다. 사람의 웃음 뒤편에는 칼이 꽂혀 있기도 하다.

나카시마 감독은 인간이 가진 이중성의 가면을 잊을 만하면 툭 하고 던진다. 히데키와 카나의 결혼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축하의 말과 박수를 건네지만 어디에선가 "정말 애 쓴다", "여자네 집에 빚이 많았나 봐"라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화가 어떤 순간에도 서늘함을 꼭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트리플픽쳐스


영화는 오컬트(신비스러운 현상)적인 소재를 섞어 시각·청각적인 공포를 최대한 자극해 팽창하다. 곳곳에 피가 흥건하다. 갑자기 문을 쾅 치는 피 묻은 손바닥, 갑자기 어깨에서 피를 뿜어내는 직장 동료, 폭포처럼 피가 쏟아지는 맨션의 베란다가 그렇다.


익숙한 목소리로 주인공을 교란하는 전화 속 목소리도 섬뜩하다. '그것'을 불러 쫓아내기 위해 만든 대규모의 불제 의식은 볼거리. 거대한 제단에서 수십 명이 주문을 외우며 치르는 의식은 거대한 전투 신을 보는 것처럼 웅장하다. 나카시마 감독은 이 모든 이야기를 방심할 틈 없이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무지개처럼 각자의 확실한 색깔을 드러낸다. 영매사로 등장하는 마츠 다카코는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선한 얼굴로도 독(毒)을 담을 줄 안다.


쿠로키 하루는 극한으로 내달린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린다.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 <보기왕이 온다>가 원작. 2015년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15세 관람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중복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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