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에서 호빵맨을 만났을 때

[내가 가 본 TV·영화 속 일본②] 드라마 '망각의 사치코'와 고베 시

by 김진수
고베1.jpg 2020년 1월 4일 고베 ⓒ김진수


내게 일본을 찾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휴식과 충전. 회사를 다녔을 때 하루 연차를 내고 주말과 휴일을 껴서 2박 3일을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일본이었다. 올해 1월 초 오사카에 간 이유도 그랬다. 오사카로 떠나기 2주 전쯤 붙을 줄 알았던 한 회사의 면접에 떨어졌다. 면접에 떨어진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실감이 컸다. 자연스럽게 비행기 티켓을 찾았다. 그렇게 1월 3일 오사카에 도착했고 다음 날인 4일 처음으로 고베시에 갔다.


고베에 도착하니 이국적인 거리와 야경이 멋있다는 고베항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관광객들이 자주 많이 찾는다는 로스트비프 덮밥집에 가서 친구와 한 그릇씩 먹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고베규(고베 소) 스테이크가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하지만 1인분에 3만 원 넘는 식사 금액은 여행일지라도 부담스러웠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고민 끝에 “다음에 먹자”가 되었다.


여행의 묘미는 기대하지 않은 일에서 작은 기쁨을 얻을 때다. 산노미야 센타가지 상점가를 걷다가 식기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밥그릇과 젓가락을 하나씩 샀다. 저렴하면서 단단해 보였다. 두 번째는 고베항에 갔을 때였다. 펼쳐진 바다와 고베항의 랜드마크 붉은색의 고베 포트 타워의 빛깔도 좋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앙팡맨 어린이 박물관이었다. 한국에서는 호빵맨이라는 불리는 이 캐릭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카레빵맨, 식빵맨, 메론빵맨 그리고 호빵맨의 영원한 적수 세균맨까지. 어릴 때 일본에 살았던 나에게 영웅이자 호빵맨을 고베에서 볼 줄이야.

KakaoTalk_20201014_091933732.jpg 고베에 있는 호빵맨 어린이 박물관 ⓒ김진수
호방.jpg 지못미...ⓒ김진수


호빵맨 캐릭터 상품을 잔뜩 파는 숍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내가 관심을 보인 건 캐릭터 얼굴하고 똑같이 생긴 빵을 파는 곳이었다. 심지어 계산대에서 사고 싶은 빵을 말하면 점원들이 화덕 모양의 저장 공간에서 빵을 꺼내 주었다. 물론 진짜 화덕은 아니다. 나는 친구와 “마케팅이 참 좋네. 애들한테는 정말 추억이 되겠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 틈에 줄을 섰다. 빵을 먹어보니 캐릭터 얼굴을 먹는 것 같아서 꺼림칙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앙팡맨 박물관을 지나 바다 바로 옆에 대관람차를 타고 넓은 고베의 경치를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내가 고베 여행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린 건 얼마 전에 본 일본 드라마 때문이었다. <망각의 사치코 – 신춘스페셜>(TV도쿄)을 보고 나서다. 결혼식 당일 신랑 될 사람이 갑자기 도망가 버린 후 잠시라도 멍을 때리면 그 남자를 생각하는 사치코(타카하타 미츠키). 사치코가 그 남자를 딱 잊는 시간이 있는데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다. 2018년 스페셜드라마로 시작해 연속 드라마로 시작해 올해 방영한 신춘스페셜의 무대가 고베시였다. 이번 편은 출판사 편집자인 사치코가 문학상이 유력한 담당 소설가의 차기작 취재를 돕기 위해 함께 고베에 가는 이야기다. 이번 편은 거의 식도락 여행에 가깝다.


망각1.jpg <망각의 사치코 - 신춘 스페셜드라마> ⓒTV도쿄


망각2.jpg <망각의 사치코 - 신춘 스페셜드라마> ⓒTV도쿄


내가 먹지 못했던 고베규 스테이크집부터 1946년에 창업해 굵은 소시지와 씨겨자가 들어있는 기다란 토레론이라는 이름의 기다란 빵을 파는 베이커리,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이쿠타 신사, 고베항 대관람차, 그리고 고베와 가까운 곳에 있는 아리마 온천까지 드라마의 무대가 된다. 아마 내가 고베에서 가보지 못했던 곳들이 대부분이라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가 여행 간 고베가 떠올랐지만 고베를 새롭게 여행하는 느낌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참 운이 좋았다. 고베에 간 것도, 고베에서 뜻하지 않았던 기쁨을 얻었던 것도. 그게 당분간, 마지막 일본 여행이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땐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직접 가는 여행은 당분간 사라졌지만 이제는 TV로 여행을 기억하고 여행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아, 이제는 이게 여행의 묘미다. TV나 스크린으로 여행을 하는, 아쉽지만 이 시대의 어쩌면 새로운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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