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증발> 김성민 감독 인터뷰
"사람이 슬프기만 하면 살 수 없잖아요.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고 이기려고 노력하는지, 그 노력을 얼마나 고립된 상태에서 하는지 담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장기 실종아동 가족들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고 공감하면 자연스럽게 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까요?"
지난 10일 만난 김성민(38) 감독의 말이다.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증발>은 김 감독이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 최용진씨의 가족을 촬영해 7년 만에 완성한 결과물이다. 당시 최용진씨 가족은 서울 망우1동의 한 아파트에서 거주했다. 둘째 딸 최준원(당시 6살·현재 26살)은 2000년 4월 4일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부모는 방송에 출연했다. 전단을 본 시민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하지만 준원이를 찾지 못했다. 용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록하고 찾고 또 찾았다. 용진씨가 기록한 수사 노트는 5권 분량이 넘었다. 그렇게 딸의 행방을 쫓은 지 올해로 20년째. 용진씨는 이사를 하지 않은 채 같은 집에서 준원이를 찾고, 또 기다리고 있다.
김 감독은 2013년 11월 장기 실종아동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인의 실종이 계기였다. 절박한 마음이 생겼고 실종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실종아동찾기협회를 통해 장기 실종아동 부모들을 만나다 용진씨를 알게 됐다.
"준원이 실종사건에는 특이한 점이 있어요. 대낮에 실종되었고 목격자가 없죠. 마지막 목격 장소도 특정되지 않아요. 1년 동안은 준원이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아버님이 쓴 실종수사노트를 읽고 준원이의 행적을 쫓는데 1년 6개월이 걸렸어요. 그제야 (용진씨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도 눈에 들어오고 (첫째 딸) 최준선씨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6개월간의 설득 과정을 거쳐 딸을 찾는 용진씨의 일상에 동행했다. 일주일에 최대 나흘 동안 용진씨와 함께 했다. 용진씨의 집에 머물기도 했고 2016년 장기 실종아동수사팀이 서울경찰청에 생기면서 수사팀과 함께 준원이의 행방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경북 봉화, 목포 흑산도, 안동을 포함해 다큐멘터리에 나오진 않지만 진도군과 신안군 등 그야말로 전국을 따라다녔다.
총 촬영 기간은 5년이 넘었다. 김 감독은 "아버님과 동행하고 수사팀 수사과정을 따라가면서 준원이를 찾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개인적으로도, 작업자의 입장으로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며 "그래서 촬영을 언제 어느 시점에 종료해야 할까 고민했다. 가족 이야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용진씨가 웃는 장면이 거의 없다. 실종수사팀이 생겼다는 소식에 희망을 품을 법도 했지만 그는 침착하고 차분하다. 김 감독은 "아버님은 의식적으로 희망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훈련을 해온 것 같았다. 섣불리 희망을 품으면 그만큼 절망할 수 있고 준원이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기대 자체가 삶의 고통이기 때문에 희망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첫째 딸 준선씨는 아버지와는 약간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준원이를 찾는데 모든 시간을 쏟는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원망하며 힘들어한다. 오랜 시간 가족에게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준선 씨가 가장 힘들어했던 건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부분이었어요. 자신이 왜 외로워하는지 사람들이 관심이 없고 가족조차도 없다고 생각해요.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야기를 보고 들은 사람들이 응원해준다는 걸 준선씨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김 감독은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으로 가족을 보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대신 장기 실종아동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 시선에서 이 가족들의 모습을 해석한 진실을 관객들이 보고 나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제가 호소하지 않아도 과자 봉지 뒤에 있는 실종아동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도 있고 사진을 보고 기억할 수도 있다. 그게 제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준원이 가족에게 공감했다면 또 다른 가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관객들이 그런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준원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제 책임은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큐를 찍으면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계속 다짐하고 있습니다. 준원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제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할 겁니다."
그는 앞으로도 다큐멘터리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를 다니면서 방송국 교양프로그램 피디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학교의 한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마음만 먹으면 다큐멘터리도 왜곡이 가능하다는 위험성을 깨닫고 더 궁금증이 생겼다.
"다큐멘터리를 한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이더라고요. 왜 보지 않는 걸 만들려고 하냐면서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재미라는 것에도 여러 층위가 있겠지만, 저는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차기작으로 소방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