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29일 개봉)를 직접 찍고 출연한 한태의(27) 감독은 인터뷰 도중 "저와 말하는 거 재미있으세요? 아, 다행입니다. 너무 다행입니다"라며 웃었다.
딸인 한 감독과 엄마 최미경(55) 씨, 딸의 친할아버지이자 엄마의 시아버지인 한흥만(78)씨가 함께 사는 이야기. 무거운 가족사 같지만 다큐멘터리는 유쾌하고 활기차다. 한 감독이 지닌 밝은 에너지 덕분이다.
엄마가 "난 결혼부터 잘못했어"라고 말할 때 한 감독은 "나는 뭔가 성공할 거 같아"라고 말한다. 그런 한 감독은 가족에게 늘 헌신적인 엄마는 답답하게만 보였다. 어느 날 20년을 함께 산 할아버지가 갑자기 따로 살자고 선언한다. 해방이라고 느낀 한 감독과 달리 엄마의 표정은 밝지 않다. 왜 그랬을까. 지난 26일 한 감독을 만나 물었다.
'가족'에 올인하는 엄마
한 감독은 4년 전 어느 날 집에서 중고 캠코더를 손에 들었다. 시작은 엄마 때문이었다. 항상 자기는 뒷전에 두고 가족에게 '올인' 하는 엄마가 신기하게 보였고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12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엄마는 시아버지를 여전히 모시고 산다.
"전 절대로 엄마처럼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저랑 성향이 완전 반대이기도 하고요. 엄마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어요."
집에서는 캠코더를 틀어놓은 채 밥을 먹고 엄마,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엄마와 함께 장 보러 가면서는 캠코더를 들고 찍으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찍고 나서 영상을 확인해보니 알게 됐다. 한 감독은 가족에게 헌신적인 엄마에게 늘 불만을 이야기했고 엄마는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20년을 같이 산 가족에게 '잘 맞지 않는다'며 따로 살자고 제안했다. 한 감독은 자신이 던진 질문들과 엄마의 독립과정을 묶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립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동산을 찾아다니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엄마는 기뻐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헌신해야 한다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엄마가 할아버지와 살면서 속상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집을 나올 수 있었는데 엄마는 그걸 힘들어하셨어요. 저는 엄마가 기회만 있으면 바로 나갈 줄 알았거든요. 가족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한 감독이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은 엄마와 함께 친가 결혼식에 갔을 때였다. 친가 가족들은 엄마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진심이 느껴졌다. 고모할머니는 엄마에게 "애기"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제야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인간 최미경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엄마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엄마가 사랑받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한 감독은 "가족은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오해하기 쉽다"며 "난 이사가 해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오해가 많다. 항상 가족을 바라볼 때는 알아서 판단하거나 정의를 내리지 말고 질문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옛날에는 엄마가 무조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로 '하지 마'라고 많이 했었다.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 엄마는 가족과 20년을 살았다. 딸로서 엄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계속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들이 새롭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저는 엄마가 서핑 간다는 말을 하면 너무 멋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나서는 할아버지가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나서 알았어요. 엄마를 찍을 때는 완전히 클로즈업해서 찍는데 할아버지는 화면의 거리가 있었어요. 제가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사건이 벌어질 때는 할아버지와 사는 게 불편한 마음이 컸었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는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거든요. “
한 감독은 재수를 준비하던 스무 살에 우연히 영화감독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을 본 게 계기였다. 그는 "제가 누구한테 혼나도 반성을 잘 안 한다(웃음). 그런데 두 시간밖에 안 되는 영화가 반성하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보존이 된다. 오늘 내가 본 영화를 10년 뒤 다른 분들이 보고 영향을 받을 거다. 그런 매체를 해보고 싶은 끌림이 생겼다"라고 했다.
현재 블랙 코미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메기> 이옥섭 감독, <창진이 마음> 궁유정 감독과 한 작업실에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유연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최근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 꽂혔다고 했다.
"좀비가 나오는데 아마 영화를 보면 배꼽 잡고 웃으실 거예요. 감독이 저랑 유머 코드가 잘 맞을 것 같아요. 저랑 대화가 안 끊길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