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친구랑 유럽여행 가고 싶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언가 멋들어진 부제목을 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뭘 알아야 멋진 척도 하지.
1. 나는 유럽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2. 나는 이 영화를 찍은 감독도 잘 모른다.
3. 나는 아직 늙지도 않았다. 아직 철없고 까칠한 막내가 내 정체성에 더 가깝다.
4. 나는 스페인 역사도 잘 모른다! 이과로 진학한 것이 잘못이다.
5. 영화에서 나온 수많은 외국 연예인 중에 아는 사람이라곤 이름만 아는 밋 재거와 간달프 할아버지(이안 맥켈런)뿐이다.
영화 관람이 재미없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이렇게 배경지식 없는 나도 재미있게 봤다. 이 영화를 이해했냐고 물어본다면 전혀 아니다. 결말도 충격적인 열린 결말이라 혼란스럽다. 보통 영화는 시련으로 서사를 짜간다. 러닝타임 내내 시련을 해결한다. 보통 여행 영화에서, 특히나 유쾌한 영화에서 실종이란 서사의 흐름을 만드는 시작이지 결말이 아니다!
영화의 결말은 기름도 떨어지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 조난된 스티븐 쿠건이, 급진주의자로 보이는 무슬림들이 다가오는 걸 보며 끝난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충분히 납득 가능했다. 결말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그러게, 왜 이슬람인들은 둘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그렇게 많이 등장했는데, 주된 서사에 전혀 나오지 않았지? 나는 그걸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네.
이 영화는 되짚어볼수록 마음에 든다. <인피니티 워>랑 전혀 다르게 예측되지 않는 흐름도 좋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예쁜 장면도 좋았다. 오해하지 마라. 나 인피니티 워 3차 찍었다. 라그나로크는 5번 넘게 봤다. 와칸다 포에버. 하지만 솔직히 <인피니티 워> 스토리는 정말 취향이 아니었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트립 투 스페인>은 내가 이해한 것 외에도 숨겨놓은 장치가 더 많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이해한 유머보다 이해하지 못한 유머가 더 많고, 알아챈 성대모사보다 알아채지 못한 성대모사가 더 많다. 스페인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나, 종종 등장하는 상징물들도 그럴 것이다. 그 점이 거슬린다.
나는 이 영화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해설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유럽에 속해있지 않고, 동거와 결혼에 대한 그들의 인식도 공유할 수 없다. 영국 아카데미와 오스카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모른다. 짐작만 할 뿐이다. 저 두 사람은 왜 실제 이름으로 영화에서 불리는지. 저 두 사람의 실제 이야기인지.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이렇게 대립되는 캐릭터로 존재할 리가 없으니 분명 허구가 섞였겠지. 하지만 대체 어디서부터였지? 대체 왜 저 두 인물을 진짜 이름으로 설정했는지?
그래도 내가 어느 책을 읽든, 어느 영화를 보든 배경지식이 엄청나게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장미의 이름> 소설 말고 내 배경지식이 이렇게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될 줄이야. 문화 차이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하기야 나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이름도 못 외우는데, 외국의 나이 지긋한 유명 연예인을 어떻게 알까?
그러니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멋진 말로 수식할 수 없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었고, 감히 말하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 이해하지 못해도 재밌고 웃을 수 있다. 눈이 즐겁다. 영화 중반부터 망했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냥 솔직히 쓰기로 했다. 원래 후기는 솔직해야 제맛 아니던가.
나는 전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넓은 풍경을 잡아내는 카메라, 아름다워 보이는 음식, 시끌시끌한 분위기, 내가 바로 옆에서 여행하는 듯한 기분. 충분히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두 인물의 여행. 허구의 여행을 쫓아가는 이 영화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기억 속의 모든 여행이 그렇듯 낭만적이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재관람을 할지 말지 고민이다. 아마 안 할 것 같다. 이어팟을 잃어버려서 다시 사야 하기 때문에 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