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감정은 이성을 알지만, 이성은 감정을 모른다.

by 토독


색을 해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이 영화의 주제가 모성애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성악설이라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과제로 보면서 머리가 아팠지만, 좋은 영화이므로 추천한다.(그거랑 상관없이 과제에 오타가 발견되어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이 영화가 익숙함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케빈과 에바는 호감에서 출발한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에바는 자신의 삶을 갑자기 변화시킨 케빈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케빈은 사랑해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거부감을 가진다. 그 갈등의 끝은 끔찍한 결과를 불렀다.


그러나 에바는 마지막에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아들을 끌어안는다. 어째서일까? 자신의 남편과 딸을 죽인 아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가 익숙함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려준 모성애 같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보아온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익숙함이다.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고, 이미 너무 많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끌어안고 가는 것이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지만, 영원히 좋아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완전한 이해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평생 미움을 지워버릴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끌어안고 가는 것이다. 힘들지만 다음으로 가는 출구는 빛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린 케빈이 말했듯이 좋아하는 것과 익숙한 것은 다르다. 좋아함은 감정이고, 익숙함은 경험이다.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끊어낼 수 있지만 익숙한 것은 끊어내기 힘들다. 아들과 어머니로서 끔찍한 사건과 오랜 역사의 끝에 서로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의 익숙함은 사랑으로 해석될 수 없을까? 그 정도로 짙은 익숙함은 모성애가 될 수 없을까? 나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사람인데 어떻게 전부 좋아해 주고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게 영화의 해석으로 올바른지 모르겠다. 결말의 의미와 해석은 충분히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이 대사일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케빈은 감정적이다. 그리고 에바와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감정선을 가졌다. 둘의 유사성은 스크램블 에그와 손톱 장면에서, 그리고 남편과 실리아와 달리 같은 검정 머리칼을 지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에바는 케빈을 이해할 수 없고, 케빈은 에바를 좋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서는 케빈 자신의 이성으로도 스스로의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은 이성을 안다. 케빈은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 감정적 행동을 소름 끼칠 정도로 완전하게 해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감정이 퇴색되고, 여전히 곁에서 기다려주는 어머니가 앞에서 이유를 묻는다. 그는 자신의 이성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








분명히 제목에서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지금 나는 에바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를 기른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사람은 정말로 환경에 더 많이 영향을 받을까? 케빈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런 환경에서 다른 아이가 자랐더라도 그런 결말이 나왔을까?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지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해선 안 된다. 어머니도 자식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그녀는 스스로 남편과 딸을 쏘아버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잔인할 정도로 못되게 군다. 부모의 죄를 자식이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식의 죄는 부모가 받아도 되는가? 연좌제가 거꾸로 작용하는 상황을 보면서 부모의 의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부모님이 나에게 못한 것도 있고, 잘한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 못해준 부분이 너무 아쉬웠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나니 완벽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잘못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내 경우에 우리 부모님이 기본적으로 좋은 분들에 속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식은 무조건 부모를 용서해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부모도 무조건 자식을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식의 의무와 부모의 의무를 어디까지로 규정해야 하는 걸까? 부모가 어느 정도로 잘못했으면 그건 부모의 탓이 될까? 영화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에바는 미숙한 어머니였으나, 죄를 지었는가?


하지만 끝내 에바는 그 수모를 모두 참고, 아들의 퇴소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울린 배경음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계셨다.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를 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자식을 참고 익숙해지고 기다려 주었다. 다만 케빈은 그 노력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미숙한 어머니였던 에바는 미숙한 자식을 기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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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로 스크램블 에그에서 계란 껍데기를 뱉는 것과 손톱을 뱉는 장면의 유사성은 많이 논의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단지 둘이 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케빈도 이기적이고 에바도 이기적이다. 남편과 딸은 갈색 머리칼을 가졌지만, 케빈과 에바는 검은 머리칼을 가졌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닮은 타인을 보게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닮은 두 사람이 서로를 싫어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즈라 밀러 진짜 잘생겼다. 이 영화에서 진짜 파릇파릇해...... 마음편하게 외모를 즐길 수 없는 영화였지만 진짜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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