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KE MAKER 2018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목에서 부드럽다는 말을 썼지만, 사실 영화는 전혀 부드럽지 않다. 컷과 컷도 딱히 자연스럽지 않고 (조금 옛날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저예산이었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산 문제가 있었다고.) 극의 초반에는 주인공을 보고 '이거 사이코패스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든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굳이 상처를 후벼 파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끝나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그래도 그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처의 치유를 정말 부드럽게 표현했구나.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골자는 '잃어버린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있다. 치유는 한 번에 짠하고 완성되지 않는다. 치유는 약이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한 번에 단맛이 피어오르는 케이크의 경험과는 다르다. 연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고, 고통스럽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치유는 마법처럼 완성되지도 않고, 다른 누가 도와줄 수도 없다. 상처를 얻은 베를린을 떠나는 것은 토마스의 결정이고, 상처를 받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은 아나트의 결정이다. 거기서 케이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어떤 중요성도 없다. 케이크가 없더라도 이겨낼 수 있고, 케이크가 있더라도 이겨낼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케이크 메이커>에서 정작 케이크는 인물의 감성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하나의 계기가 될 뿐이다. 사랑에 빠지는 주요한 원인도,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맛있고, 달콤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상처와도 사랑과도 관련이 없는 달콤함이기에 상처받은 이가 즐겁게 먹을 수 있다.
치유는 언제나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치유의 시작인 소독부터가 고통스럽다. 누구든 상처가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더 이상 혼란이 삶을 집어삼키지 않을 정도로만. 더는 고통이 감각의 전부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단지 거기까지 나아가는데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엄청날 뿐이다. 치유는 고통받으면서 고통을 없애는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마스는 아나트를 마주하러 가고, 아나트는 토마스의 정체를 깨닫는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치유의 과정에서 케이크는 말초적인 기쁨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단순한 즐거움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것들이 때때로 정말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우리를 우울에서 현실로 다시 붙들어오는 것들, 내가 받고 있는 고통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 치유의 고통을 순간이라도 잊게 해주는 것들. 내려쬐는 햇살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얗게 가라앉는 눈과 얇은 살얼음. 그러한 기쁨들이 있기에 상처도, 치유도 고통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케이크는 고통을 치유하게 해주는 약도, 사랑의 묘약도 아니다. 삶이 아니라 순간으로 감각을 되돌려주고, 그래서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아나트에게 그런 단순한 기쁨을 만들어준 이는 상처의 원인인 토마스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번외로 정말 짧고 치유와는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만 하고 끝내겠다.
아나트는 토마스와 선을 넘게 된 후에 웃는다. 울음이 섞인 웃음이다. 꽤 긴 테이크인데, 아나트 역시 남편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좋아했겠지만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과 싸운 뒤에 죽어버렸고, 옆에 있던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건 죄책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죄책감, 원망이 뒤섞인 감정을 치유하지 못한 채로 맞는 사랑은 불행이다. 그래서 아나트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새로운 출발을 기뻐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출발하고야 만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다
이는 계속해서 나오는 코셔와도 관계가 있다. 그녀는 코셔를 아주 중요시할 수밖에 없지만 코셔를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코셔를 지키기는 하지만, 아이에게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금기를 중요시하면서도 금기를 넘어가고 싶어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같이 세월을 보낸 남편을 배반한 기분에 시원하게 웃을 수 없듯이. 금기에 대한 것도 이 영화를 이루는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유대인 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독일과 이스라엘의 합작영화이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와 문화적 해석이 부여될 것 같다. 하지만 타국인에, 세계사도 잘 모르는 내가 무슨 수로 감히 이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역사를 잘 아는 다른 분들의 글을 참조해서 읽으면 영화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만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