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2018
1.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했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2. 무비 패스로 본 것치고 너무 늦게 올리는 것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맞습니다. 아르바이트하다가 갑자기 입원하고 퇴원하느라 글을 늦게 올리네요. 아르바이트하다가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가다니 이거 완전 이 시대의 청춘 아닌가 어이없네요.
3. 일단 아래에 구구절절 쓰기 전에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웃겨요. 진짜요! 아래에 열심히 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코미디 영화입니다.
사실 리뷰가 정말 쓰고 싶었다면 몸이 아픈 와중에도 어떻게든 썼을 것이다. 입원하고 나니까 아프지도 않았다. 갑작스러운 입원이다 보니 노트북을 챙겨 올 틈도 없긴 했지만, 일단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픈 과거는 극복하진 못하더라도 직면해야 한다는 주제는 참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를 끝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아버지가 주었던 사탕 한 조각 따위는 나오지도 않고 오로지 증오, 원망, 미움뿐이라는 것도 좋았다. 학수가 아버지에게 죽지 말라고 한 것은 아버지를 용서했기 때문이 아니라 죽길 바랄 만큼 미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부장적인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같이 보러 간 지인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는데, 그 아버지를 미화하는 어떤 장면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고, 영화는 그걸 철저하게 학수 시점에서 보여준다. 학수와 아버지의 관계는 애증이 아니다. 그냥 증오다. 가능하면 평생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인, 혹은 혈연주의적인 문화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문화에 살고 있는 우리처럼 학수도 결국 입원한 아버지를 보러 간다. 죽어버리라고 말하지만 때리기 전에 망설인다. 하지만 결국 한 대 때리고 만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죗값은 치렀으면 좋겠는 것이다. 나에게 준 상처만큼 상처 입었으면 좋겠는 것이다. 아버지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내가 아팠던 것보다 조금 더, 더 많이, 그렇게 적당하게 아팠으면 좋겠다.
차라리 경멸하면서 떠날 수 있으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학수는 과거를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묻어버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막바지에 들어가 아버지를 한 대 때리고, 용대와 갯벌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극복된다. 그런데 이건 아픔의 극복이 아니라 회피의 극복이다. 어떤 식으로든 직면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만 그럼에도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고 카메라가 떨리도록 흔들려야 한다. 그렇다고 고향이 갑자기 아름다워 지지는 않는다. 그냥 그게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뿐이다.
이 작품이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의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사실 학수는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조금 많다. 그는 사춘기를 끝내지 못한 청년이다. 사춘기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걸 외면하려고 했으나, 상처가 다시 되살아나버려 마주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참 끔찍하다. 한창 우울할 때 했던 생각과 같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그러한 일에 처한다면 나는 또다시 불행해질 거라는 생각에 우울했었다. 지금은 그래도 버티면 다시 어떻게든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게 내 나름의 극복이었고 내 사춘기의 마침표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청춘이라기엔 아슬아슬한 나이의 주인공을 내세워서 다룬 청춘은, 아마 청춘의 마지막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아름답게 지는 노을이 고향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청춘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내 고향은 폐항, 가난하여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이 말은 학수의 청춘으로 바꿔도 된다. 가난하고 상처가 많았지만 아름다운 광경 하나쯤은 존재했다. 그리고 이제 상처를 직면하고 그걸로 되었다고 긍정할 때 긴 사춘기는 끝이 난다.
이렇게 해석한 이유 중 하나는, 철저히 학수의 인생 하나만을 다룬 영화라는 점이다. 물론 마지막에 선미의 서사도 들어갔지만, 그를 제외하면 모두 학수의 시점이다. 인물은 무조건 그 인물이 학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점으로 설명된다. 학수가 살아온 청춘, 사춘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시점으로 진행되는 건 사춘기의 마지막이다. 자신이 그 시절에 어땠는지 인정하고, 직면하는 단계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아버지를 한 대 팼다는 것이 좋았다. 학수가 가진 원망이 학수 내면의 가부장적인, 혈연주의적인 문화를 넘어설 정도로 강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아버지를 용서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그렇게 밉다는 점을 표현했다는 점이 좋았다. <뉴스룸>에서 갑자기 환각을 보더니 용서하게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물론 <뉴스룸>의 주인공은 학수보다 훨씬 인격자지만.
김고은 배우의 역할은 사랑스러웠다. 내가 <도깨비>를 보다 만 희대의 희귀종인데도 그랬으니 말 다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욕을 까고 좋아하는 애 앞에서는 뻔히 보이는 내숭을 떠는 사람이 어떻게 안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사랑스러운 장면은 노래방에서 되지도 않는 랩을 하고 술판을 쓸어버릴 때였다.
나한테 <변산>은 이렇게 맘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스웩 넘치는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낡았다. 그게 장점일 수는 있는데, 적어도 스웩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캐치 프레이즈로 밀만한 대사들도 너무 뻔하다. 값나게 살 순 없어도 후지게 살진 말아? 단언컨대 김고은이 한 대사 중에 가장 별로였다. 너무 뻔하고 클로즈업도 뻔하고. 뻔하고 웃긴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짚이는 게 많은 영화이긴 한데, 그 장면은 너무 뻔했다.
그런데 이 대사만 그런 건 아니고, 영화 전반에 걸쳐서 대사들보다 장면이 더 매력적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런데 흔들리는 장면이 조금 많다. 격정을 담기 위해서라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인과 나의 호불호가 갈렸듯이 말이다.
장르가 코미디인데 메시지를 욱여넣기 위해서인지 코미디에서 진지한 장면으로 빠르게 넘어간다. 그대로 흐름을 탄다면 재밌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급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진지한 장면은 꽤 길어 음미할 수는 있지만, 그 사이사이의 감정 전환이 빠른 편이다.
킬포인트는 박정민 배우의 애드리브라고 들은 "누구여!"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이 웃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