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재밌는, 접근하기 쉬운?

조조 래빗

by 토독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르: 라그나로크'와 '뱀파이어에 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이다. 나치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caging skies'라는 원전 소설이 있지만 감독이 크게 각색했다고 한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각본상과 작품상을 받은 2020 92회 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작품이 이를 다루었고 장르도 다양하다. 내가 접한 것만 생각해보아도 만화인 '쥐',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소설인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이 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다루는 것은 필연적으로 조심스럽다. 나치의 모욕을 듣는 유대인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호빗의 키가 작다고 무시하는 장면을 찍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재는 종종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수많은 소설과 작품도 역사적 문제를 너무 가볍게 묘사한다는 비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이 역사가 진지하고 무겁게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이유에서 나는 나치를 소재로 한 작품을 유명한 몇몇만 읽었을 뿐, 많이 읽지 않았다. '책 읽어주는 남자'를 무척 좋아했음에도 그랬다. 물론 진지한 접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복제에 가까운 것들만 봐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진지하고 무거운 고찰과 상관없이, 그 고찰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 고찰과 함의는 낯설어야만 한다. 나이브한데 웃기지도 않은 것들, 진지하고 무거워 피곤한데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나이브한 것들. 이미 대다수가 극복한 문제와 질문을 물고 늘어지는 답 없는 것들은 인기가 떨어진 지 오래다. 물론 그런 게 필요한 순간도 있다. 사랑은 증오를 이긴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는 히어로의 정신이라거나. 그런 건 인류 앞에 고난과 난관이 있다면 영원히 인류를 관통할 테마가 될 것이다.

이런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타이카 와이티티라는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푹 빠졌던 첫 번째 오락영화는 '토르:라그나로크'였다. 감독의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감독의 데뷔작인 '뱀파이어에 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인데 이상하게 아직도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스운 일이다. 라그나로크는 5번을 넘게 극장에서 봤는데도. 어쨌든 타이카 와이티티의 코미디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종류고 우습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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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다!


과연, 기대했던 대로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다. 대부분 쓴웃음을 짓고 봤음에도 어쨌든 꼬마 나치인 주인공은 꼬마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웠고 벽 속에 숨어 사는 유대인 역의 엘사는 안타깝고 사랑스러웠다. 확실히 조연은 우습게 연출되었고 주연들은 다층적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감정선의 고저가 심하지만 바로 그 탓에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물론 주인공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때때로 주인공의 감정은 너무 대놓고 드러나기도 한다. 이건 좀, 유치하지 않아?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나치 꼬마가 바로 그 '꼬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그런 유치하고 동화 같은 연출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재밌게 봤다.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에게 근거 없이 기대했던 정신없지만 매끄러운 전개가 그대로였다. 딱 내가 좋아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서사의 종류였다. 영화 전체는 완성도도 좋았고, 우스웠고, 재미있었다. 어떤 부분도 재미없거나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뒤로 갈수록 감정의 파고가 커졌다. 이런 점에서 '조조 래빗'은 많은 부분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를 상기시킨다.


2. 하지만... 이걸로 충분한가?


문제는 여기 있다. 이건 판타지 배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내가 타이카 와이티티에게 기대하고 온 건 이런 종류의 위트 있고 '우스움'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였다. 설령 그게 나치를 주제로 하고 있어도 그렇다. 세상이 무거운 건 이제 너무 지겹지 않나. 진중하고 진지하게 사고하고 뜻을 표하되 그 안에 유머가 끼지 못할 이유는 없다. 세상을 희화화하든, 자기 자신을 우습게 보든, 악역을 우습게 묘사하든. 인생의 문제가 아무리 무겁고 답이 없어도 웃어 젖히지 못할 이유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건 나치를 주제로 하고 있다. 히틀러가 우습게 그려지는 것은 상관없고, 폴리네시아계 유대인인 감독 자신이 히틀러로 분하는 건 어찌 보면 통쾌한 복수이기까지 하다. 엘사가 똑똑하고 지적이면서도 부당한 박해에 분노하고 흐려지며 이미 죽은 연인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너무 좋은 인물 설정이다. 그러나 꼬마 주인공은 꼬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악독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그는 겨우 '응당 그랬어야 했던' 일을 한다. 그리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물론 꼬마에게는 수많은 변명이 있다. 그가 첫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다들 첫사랑에 어느 정도 미치니까. 그는 부모를 잃었으니까. 그는 어린 나이에 의지할 곳을 잃었고 엘사는 그가 의지할 마지막 가족이었으니까. 그는 심신을 의탁했던 나치즘에 어머니를 잃었으니까. 어머니가 조국을 위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미워했지만 사실 어머니를 사랑했으니까. 그는 세뇌당했었으니까. 조국에 대한 충성을, 히틀러에 대한 맹세를, 맹목적인 증오와 숭배를 세뇌당했었으니까. 이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 꼬마는 영화에 나온 대로 무리에 편입되고 싶은 꼬마이지만 그렇다고 이 꼬마가 한 짓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는 점과 그가 최후에 악행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이 꼬마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꼬마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물로 분명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꼬마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모든 영화의 서사가 나치였던 꼬마의 성장 서사가 되어버린다. 만약 엘사의 눈에서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벽 속에 갇힌 유대인 소녀의 눈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 나치 꼬마의 시선으로 옮겨왔다면? 그랬다면 나는 이 꼬마를 더 많이 이해했을 거고 좋아했을 거며, 이 리뷰 내내 꼬마를 변론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꼬마는 주인공이고 이미 영화는 꼬마에게 너무 많은 이해를 보낸다. 물론, 이게 조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다. 엘사와 꼬마의 어머니, 스칼렛 요한슨이 분한 역할과 캡틴은 정말... 꼬마보다 매력적인 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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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과 꼬마의 마지막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캡틴은 진짜 나치고 무능하고 자기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못난 사람이다. 하지만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꼬마의 시점과 동일하게 그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이는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드러내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다. 우리의 친밀한 사람, 부모, 형제, 사랑하는 이가 사실 과거에 죄를 지었다면? 우리는 그 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제 알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칼처럼 끊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을 욕해야 하는가? 국가의 처벌에 관한 답이 아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한 질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에 이 질문을 적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꼬마가 정말 그들과 분리된 '우리'인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전부 용서해주어야 하는가? 우리는 고작 엘사가 친 뺨 한대로 꼬마를 용서해줄 수 있나? 여기에 꼬마의 어머니,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인물까지 고려하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엘사에게 꼬마는 은인의 아들이자 용서 못할 나치이자 어느새 친해진 가족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봐도 꼬마가 세뇌에서 벗어나는 걸 다루는 것보다는 엘사의 내적 갈등이 더 재밌었을 거고, 꼬마 자체도 조연이었다면 더 의미있었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 어머니의 마지막이 나오는 부분은 충격적이었다. 그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정말로.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모든 부분이 엄청나다. 정말로 그녀의 이미지와 잘 맞는 역할인 동시에 그녀의 연기가 무척 잘 드러나는 역이었다. 스칼렛 요한슨 이야기하니 또 보고 싶다.

+ 화면이 무척 뛰어나다. 되도 않는 중드보다가 이거 보니까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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