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by 토독

예전에 쓴 글이군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수정하여 올립니다. 다시 읽어보니 너무 제 생각이 짙게 들어갔지만... 보기 즐겁고, 이입하기 좋고, 결말마저 답답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즐기기 좋습니다. 이 영화는 예술인 척하지 않고, 다만 입체적인 인간을 제시합니다. 한 번 보시라고 부탁드리는 이야기입니다ㅋㅋ.



평범의 끝을 달리던 학생인 만큼, 오드리 햅번은 알아도 햅번의 영화는 사실 본 적이 없었다. 로마의 휴일과 앤 공주는 알아도, 대사 한 줄 모른다. 그런 학생이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아무 이유없이 끌려서 봤다.

원래 모든 팬질의 시작은 아무 이유 없다. 모든 사랑의 시작도 이유가 없는 법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에 폴인럽했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패션과 악세서리, 화면 구성은 세련되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련되었으나 깊이가 없다고 한다. 바꿔서 보면,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봐도 이 영화는 미친듯이 세련되었다는 뜻이다. 무려 1961년 작품이. 솔직히 이것만으로도 한 번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개연성도 떨어지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문리버는 아름답고 황홀하고, 파티씬은 우습고 재미있지만, 그게 굳이 들어가야 하는 장면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 빠져버린 건 오직 홀리 골라이틀리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은 멋지고 잘생겼지만, 미안하게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의상도 영상미도 멋지지만, 홀리 골라이틀리가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보다가 껐을 것이다.


아래는 내가 생각했던 홀리 골라이틀리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느껴진 홀리 골라이틀리에 대해 써보았다. 하지만 홀리 골라이틀리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고, 그래서 그녀가 문리버를 불렀을 때, 가면을 쓰고 폴과 데이트할 때, 화대를 받은 폴에게 웃으면서 이해한다고 말했을 때 느껴진 단상들을 전부 조리있게 쓸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입체적이고, 때때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타인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가 빗속에서 울며 고양이를 찾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입하게 된다. 이 상황이 전부 로맨스 영화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랬다.



티파니 본점 앞에, 크루아상을 들고 기다리는 줄을 만들었다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할리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틀어올린 머리, 큼직한 보석들, 등이 파인 검은 드레스에 얇은 팔을 덮은 긴 장갑. 눈동자는 보여주지 않는 선글라스, 티파니 바깥에서 보석들을 바라만 보면서, 크루아상과 커피를 한 입씩 먹고 터벅터벅 거리를 걸어가는 여자. 멋들어지게 꾸몄고 우아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건 값비싼 찻잔이 아니라 종이컵이고, 그녀가 걷고 있는 곳은 파티장이 아니라 사람이 거의 오가지 않는 이른 아침의 길거리이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티파니의 보석을 한참 바라본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돈이다. 물질적 풍요다. 그리고 분명 처음에, 물질적 풍요를 원한 이유로는 동생이 있었다. 지금은 군대에 간 동생과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는 홀리 앞에서, 누가 그렇게 돈만 밝히면서 남자를 만나냐고 매도할 수 있을까? 홀리는 그 시대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돈을 쫓았다. 남자를 만나고 유혹하고 시간을 보내도, 그녀가 진짜로 사랑하는 건 그 남자가 아니다. 그 남자가 완전히 넘어왔을 때 안겨줄 거라고 기대하는 물질적 안정이다.

그리고 농장에서 달걀을 훔쳐먹다 걸렸던 여자아이에게 물질적 안정은 곧 삶의 안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쫓았던 이유인 동생은 제대를 얼마 두지 않고 죽어버린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이유가 없어졌다. 돈을 쫓고, 돈이 있는 남자에게 웃음과 대화를 팔며 살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브라질 남성과 사귄다. 그와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뜨개질도 한다. 그게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 받고 하는 말은 이거다. '그 사람이 나를 노리개 취급하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브라질에 갈 거예요. 브라질 부자들의 리스트를 줘요. 50위까지요.'

그녀는 더 이상 브라질에 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표가 있으니 갈 거라고 한다. 그녀는 더 이상 이를 물고 돈을 벌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부자들을 골라 유혹한다.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구애하고, 그녀도 사랑을 느낀 남자를 못 본 척하면서, 이제는 갈 이유가 사라진 길을 걸어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사람이란 게 어디 무 자르듯이 행동을 잘라낼 수 있나? 어디 감정을 잘라낼 수 있나? 물질적 풍요와 상위층에 대한 동경이, 도달하면 동생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한 번에 포기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인가?


그리고 그녀는 기르면서도 차마 이름을 붙이지 못하던 고양이를 내쫓는다. 쥐도 많이 나오고, 딱 너한테 어울리네! 그녀는 불만이다. 코딱지만한 집도 싫고, 돈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 자신도 싫다. 그래서 이런 집에서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주고 싶지 않다. 이름을 줘야만 한다면 고양이를 내쫓고 없는 셈 치는 게 낫다. 언제나 그랬지 않았나? 폴에 대한 호감도, 전 남편에 대한 존경도, 그녀가 바라는 인생을 위해서 잘라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러나 그녀가 바라던 인생은 이제 불가능하다. 유일한 이유는 이미 죽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고양이를 되찾고 폴을 받아들인다. 이 장면은 그녀가 인생의 관성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로맨스 영화의 타성으로 보아야할까? 분명한 것은 그녀가 목적을 잃은 무의미한 갈망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앞으로 홀리는 무엇을 갈망하며 살아갈까? 알 수 없다. 더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에서 무엇을 바라보든, 그것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갈망과 욕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나쁜 것이 아니니까. 이제 그녀는 다시 갈망할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홀리 골라이틀리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누군가가 그 상실을 인정하고 다시 현실로 눈을 돌리는 영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무언가를 영영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 거기에 찐한 낭만과 로맨스는 덤이다. 안 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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