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불안』서평
“그래 우리는 속물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 언제나 도망치고 있지만 꽤 비싼 연극은 언제나 빈 자리가 없고 어쩔 수 없는 일도 너무 많다네…” 브로콜리 너마저의 ‘속물들’의 가사의 일부이다. 이 노래는 비싼 연극에 자리가 없어서, 비싼 건물에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못 갖는 척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그런 자리를 갖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비싼 건물 한 채, 비싼 연극을 맘대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겉으로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론 내심 바란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현대사회의 속물근성이 사회지위에 대한 불안을 야기했으며 사회지위에 대한 불안은 속물근성이외에도 사랑결핍,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변덕스러운 재능, 운, 고용주의 이익, 세계 경제)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 다섯 가지 원인이 공통점으로 갖고 있는 속성은 ‘상대적인 만족감’이다. 이 상대적인 만족감은 절대와 상대의 개념이 아니다. 타자와 자신을 비교해서 생기는 만족감이다. 65억 인구에서 상위에 들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아동문학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언제부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벌레들이 엉켜서 붙어서 세워진 거대한 기둥이 등장한다. 이 기둥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모든 벌레의 숙원이다. 그러나 이 꼭대기에서 도착한 벌레들의 대화는 절망적이다.
“야,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다른 애벌레가 대꾸했습니다.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저 밑에서 듣잖아.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우리는 와 있는 거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트리나 폴러스, 김석희역, 『꽃들에게 희망을』. 분도출판사, 1975. p75)
아무것도 없는 이 기둥을 벌레들은 왜 오르고 싶었을까.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권력과 물질을 가졌음에도 밑 빠진 독 마냥 만족을 모른다. 분명 존재 어디에 구멍이 난 게 확실하다.
“사랑,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p15)
알랭 드 보통은 사실 인간이 지위에 대한 불안을 갖은 이유는 지위가 낮아질 경우 사랑받지 못한다고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속한 준거집단에서 쓸모 있는 존재와 쓸모없는 존재, 유한 존재와 무명한 존재, 관심과 무관심,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어 있고 자신은 전자가 되지 못할지언정 후자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다. 전자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지만 후자는 눈길조차 받지 못한다. 사랑을 자기 외부에 둔 사람은 사회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존재를 상실한다. 즉 불안감은 자신에게 시작되는 불안이 아니라 사회시선에 의해 형성된 불안이다. 샤르트르가 말하는 자신의 존재를 사회시선에 ‘응시당한-존재l'être-regardant’로 객체화시켜 존재를 상실한 동화의 태도이다.
샤르트르는 인간은 ‘응시당한 존재와 응시하는 존재’를 무한히 반복하며 무로 빠진다고 주장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이겨내 왔던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재조명해 존재의 근거를 밖에서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면 이렇다.
1.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라.(p297)
2.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라.(p321)
3. 자신이 존중하는 가치에 매혹적인 진지함과 아름다움을 부여하라.(p340)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사회지위에 의한 불안을 사회 안에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는 수천 년 동안 만들어 놓은 견고한 기둥이기 때문이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또 수천년이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은 이점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이 사회를 존재의 근거로 여기는 것은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의 존재는 인간 내부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근거 또한 개인에게 있다. 둘째로 신 앞에서는 모두가 작으며, 인간의 목적지는 모두 죽음임을 강조한다. 알랭 드 보통은 신 앞에서 인간이 아무리 높아도 한계적 존재를 가진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 한계가 바로 죽음이다. 어떤 방법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서로를 비교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셋째로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p384)
정리하며, 우리는 사회의 불안을 피할 수 없다. 피해서도 안된다. 우린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족이라는 사회에서 태어난 이상, 사회를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다가 다시 가족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다만 사회에서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햄릿도 삶과 죽음의 순간에서는 스스로 결정했다. 존재가 상실되는 순간은 사회적 지위의 상실이 아닌 선택권의 상실이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