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 서평
최근 들어 SNS에 “세줄 요약”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말 그대로 글을 세줄로 요약해달라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에 매우 불편하다. 모든 글에는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의 아우라가 담겨있다. ‘토의, 논의, 토론, 의논, 담론, 논쟁’는 모두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단어에 따라서 담긴 말맛이 다르다. 한 단어를 선택할 때도 무수한 고민이 담겨있듯, 수십 문장에는 저자의 고뇌가 담겨있다. 그런 모든 문장들을 생략한 체, 세줄로 요약하는 것은 정보만 획득하려는 태도이다.
하지만 독자를 탓할 수 없다. 독자의 이런 태도는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말이다. IDC(Internet Data Center)는 2020년에 세계정보량이 40ZB(제타바이트)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는데 2005년 디지털 데이터 양이 0.13ZB였다는 점을 기억하면 정보량이 매년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디지털에 속성상 증가폭은 더욱 급격해질 것이다. 그러니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자는 당연히 정보를 쉽고 빠르게 판단하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
현실을 알면서도 내가 “세줄 요약”이 불편한 이유는 글은 정보획득을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30초 미리듣기로 듣지 않고 영화를 볼 때 3분 하이라이트로 보지 않는다. 작품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독 글만은 문전박대를 한다. 글 역시 은유 작가의 말 따라 ‘삶의 미학’ 담긴 작품이다. 예술가의 사상과 삶이 담긴 작품을 천천히 탐미하는 것은 관객(독자)의 권리이다. 책은 깊이 읽어야하는 작품이지, 지식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의 뇌가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는 인간에게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청사진이 없다며 인간의 행위에 따라서 뇌의 회로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즉 뇌는 인간의 행위에 따라서 적응하며 효율성의 논리 아래서 정보의 동선을 정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권리를 져버릴수록 비(非)독서에 익숙해져서 권리를 상실해 버린다. 이를 단순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기에는 읽기의 가치가 너무 크다. 어떻게 해야지 우리는 온전히 이 시대 속에서 종이책을 깊이 읽을 수 있을까?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는 디지털 시대에 익숙해져 종이책을 잊어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그는 “독서를 하면 지혜로워져. 그러니까 책을 읽어야돼”라고 말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뇌를 분석하고, 사회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문학적으로 독서의 함의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매리언울프에게 깊이 읽기의 상실은 자기 확장의 상실이다.
“읽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을 겪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때 우리는 타자를 내면의 손님으로 맞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타자가 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더욱 확장도고 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바뀌어 있습니다.”(p81)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읽기를 ‘혁명’으로 보았고 신학자 존 S. 던은 읽기를 통해 타인의 관점을 취하게 된다며 ‘옮겨가기’라고 정의했다. 또한 루터는 성경을 읽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으며 윌리엄 오캄 역시 성경을 깊이 읽고 법의 기초를 다졌다. 이처럼 읽기는 정보획득이 아니라 자기 확장의 행위이다. 오죽했으면 성경은 언어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아는 지식이다. 읽기가 좋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럼 어떻게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서 읽기를 습관화할 수 있을까.
답은 없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이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아홉 번 도전해야한다. 나 역시 디지털 정보에 익숙하다보니, 긴 글에 집중하기 어렵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세 번이나 도전한 끝에 읽었다. 매리언 울프 역시 뇌가 읽기 회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의도적인 읽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뇌는 반복된 노력에 자극을 받아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읽는 뇌 회로’를 만들고, 이 회로는 경험에 의해 변화되는 신경가소성을 갖고 있어서 다양한 회로들과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디지털 매체를 인식하는 회로와도 연결되고 사고능력과도 연결되어 종합적인 형태를 이룬다. 즉 읽기는 종합적인 뇌 사고를 일으키는 행위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좋은 읽기에는 노력이 뒤따른다. 가만히 있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 읽는 것부터 변화의 시작이다. 다만 매리언 울프가 우리를 위로하는 말이 있다면 억지로 읽지 말고 재미가 사라지기 전까지 읽으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목적이 불순해도 좋다. 일단 읽어라. 누군가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서 철학책을 읽어도 좋고 킬링타임용으로 소설을 읽어도 좋다. 감성인스타의 문구를 찾으려고 시를 읽어도 좋다. 일단 읽어라. 사사키 아타루는 말한다. 당신이 불순한 목적으로 책을 읽을지라도, 사실은 책이 당신을 선택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