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서평
며칠 전 전태일 열사(1948.8~1970.11)가 생을 마쳤던 평화시장을 걸었다. 겨울을 맞이한 평화시장에는 스산한 바람만 가득했다. 평화시장 옆 청계천을 따라 늘어진 헌책방 거리를 구경하다 역순사전을 발견했다. 역순사전. 말 그대로 순리를 거스르는 사전이다. 작문교실을 다닐 시절, 한번쯤 꼭 읽어야한다는 작가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일반 사전에 비해 단어를 찾는 법이 훨씬 어렵지만 단어를 찾은 후에는 수많은 파생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주인 노부부께 양해를 구해, 나는 구석 한편을 내어받았다. ‘봄’을 찾고 싶었다. 그것도 ‘늦봄’말이다. 다가올 겨울을 넘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봄으로 거슬러 오르고 싶었던 것일까.
『전태일 평전』의 원제는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다. 인권변호사 고(故)조영래씨가 민청학련사건으로 수배생활동안 열정을 다하여 집필한 책이다. 군사독재 시설 내내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저자의 이름은, 1991년 1차 개정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영래’로 밝혀졌다. 저자는 『전태일 평전』에서 장기표의 발문대로 전태일의 인간적인 면모를 두드러지게 그려낸다. 『전태일 평전』은 어린 시절을 담은 1부, 평화시장의 순리를 담은 2부, 근로기준법을 읽고 정의를 깨닫게 이야기를 담은 3부, 전태일의 저작들을 중심으로 사상을 담은 4부, 노동투쟁을 담은 5부로 구성되어있다.
평화시장은 공권력과 자본이 결합하여 순리를 만들었다. 평화시장의 순리는 매우 경제적이었다. ‘저비용 고효율’ 논리에 순종적인 업주들은 노동자를 착실하게 착취했다. 이 순리의 밑바닥은 당연히 여공들이었다. 여공들은 먼지투성이 작업장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하고 받는 한 달 임금은 단돈 3,000원(1970년 기준)이었다. 노동은 어린 소녀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였다. 오죽했으면 ‘평화시장 여공은 데려가도(결혼) 한 3년밖에 못 써먹는다’는 말이 있었을까.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들을 위한 법도 없었고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손이 굳고 눈이 멀어도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암흑 속에서 여공의 편은 없었다.
그런 암흑시대 밝히는 불이 있었다. 전태일의 분신은 가려졌던 여공의 비애를 세상에 비추었다. 재단사로 유일하게 숙련공 편에 섰던 전태일은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바보회’를 창립하여 노동부와 언론에 근로조건의 부당함을 고발했지만 순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현실의 장벽에 막혀서 무산당했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자들의 집회가 경찰과 고용주 측에게 방해받자, 전태일은 온 몸에 불을 붙이고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결정적으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말라”를 외치며 분신자살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이 무력함에 대한 저항, 졸렬과 수치에 대한 통렬한 복수이었던 것처럼 전태일의 자살 또한 순리에 대한 저항, 비겁과 치욕에 대한 통렬한 복수였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사회의 역순을 이끌어냈다. 그의 불은 노동계, 정치계, 사회계에 메말랐던 마음에 불을 붙였다. 단결투쟁, 대학생들의 시위, 정치인들의 공약을 이끌어냈다.
그로부터 오십 여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었다. 대한민국은 GDP 명목기준 세계 11위가 되었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과 IMF극복이라는 경제역사를 지내며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타이틀도 생겼다. 하지만 정말일까. 대한민국은 정말 성장했을까. 도로의 아름다움을 위해 빈민과 철거민들을 허허벌판으로 쫓아버린 광주대단지사건, 값싼 노동력을 위한 의도적인 농촌붕괴, 쓰다버려진 10등급 국민, 순리의 피해자 77세대 등 평화시장의 순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치밀해지고 복잡해져 순응치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다시 메말랐다. 여공들을 위해 밤낮 고뇌한 전태일의 노력은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전태일 없이는 역순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역순사전을 조용히 덮었다. 봄을 찾지 못했다. 아니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행잎은 내 어깨 위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