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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모 Nov 05. 2019

돈으로 살 수 없는 음식

지인들 덕분에 처음으로 서촌 마을을 방문했다. 이미 ‘유행’이란 녀석이 서촌 마을을 휩쓸고 익선동으로 옮겼다고 하지만 서촌이 처음이었던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예로부터 전문직의 마을이었던 서촌은 각기 개성이 넘치는 가게들이 많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를 이발소 ‘머리까끼’(핵심은 까까도 아니고 까끼다), 삼겹살집에서 와인을 판다는 ‘대하식당’(그것도 할머니가), 음식점보단 노래제목이 더 어울리는 프랑스 가정집 ‘나의아름다운세탁소’, 분위기가 좋아서 들여다보다 손님하고 눈 마주쳐서 민망했던 와인 집 ‘그란 베베도라’, 끝으로 인자한 미소로 말린 레몬을 대량 후원해주신 홍삼카페 ‘자연의 길’ 그 외에도 눈길이 가는 곳은 수 없이 많았다. 마트에서 장난감 진열대를 지나는 아이처럼 보이는 가게마다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한 지인이 말했다.     

삽겹살과 와인을 파는 대하식당

“예전이 훨씬 나았어. 지금도 예쁘긴 한데, 이전에 비할 수 없지. 

이 거리 유명해지고 나니까,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 

돈 많은 사람들이 가게들을 샀다고 하더라고...”     


며칠 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를 봤다. 우연히 TV프로그램이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가게들이 일 년만 지나면 맛이 변하고 서비스가 변한다는 내용이다. 그 이유가 건물 주인이 그 가게를 매입하거나 세를 높여 원래 가게를 쫓아내고 같은 음식을 파는 다른 가게를 차리기 때문이다.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애쓰며 키워낸 가게가 ‘돈’에 밀려 사라지는 꼴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노력, 애정, 노하우 그리고 추억과 이야기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러니 오직 돈을 목적으로 돈으로 산 가게들은 옛 명성을 잃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골목식당을 돌아다니며 솔루션을 제시하는 백종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사는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파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들이 오래 그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그 곳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팔았으면 좋겠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법적으로 제제를 받았으면 좋겠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오만이 인간의 기억을 망각으로 이끌고 땅의 추억을 페인트로 덮어버린다. 오래된 가게는 오래된 기억을 남긴다. 가게의 분위기, 음식 냄새, 주인장의 미소, 사람들의 흔적. 한 그릇에 그 모든 것들이 담긴 음식은 어느 날 문득 그 가게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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