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은 것처럼
나는 고개를 숙였고 세상은 참 아름답지 못했다.
by
dle
May 31. 2023
대전의 지하상가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활기차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무료하게 바라보는
나는 몹시도 우울했다.
시끌시끌한 주변의 소음에도 선명하게 내 귓가에 날아든 노래.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 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 난 가슴이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유레카!
'내 가슴에 구멍이 나서 이랬구나.'
나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매개체로
뜻하지 않게 내 감정을 알아차렸다.
음악이란 게 심심풀이 땅콩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 차린 순간이었다.
당시에 난 지독한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소개팅에서 단 한번 만났던 사람이었는데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박해일을 닮았고 눈을 살짝 뜨고 보면 지진희를 닮았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은 박해일과 지진희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웃는 얼굴이 정말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소개팅날
삼겹살집에서 그 남자와 나
그리고 내 사수가 앉았다.
사수는 내가 부끄럼이 많고
맹추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귀한 저녁시간을 기꺼이 할애해
주었다
.
사수는 나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 주려고 노력했다.
집에 간호사가 있으면 나중에 엄청나게 큰 힘이 된다는 것(나는 간호사였었고)
여자가 공무원이면 나중에 애 낳고 키울 때 정말 좋다는 것(나는 공무원이었다)
사수가 쥐어 짜낸 칭찬은 나의 본질에 대한 것보다는 나의 직업에 대한 칭찬이었다.
사실 그 당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고작 직업뿐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직업이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둔한 사람이었다.
사수가 있을 때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고
그 남자와 사수가 둘이 소개팅에 나온 듯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했다.
분위기가 참 좋았다.
사수가 계산을 해주고 떠나자 그때까지 마신 소주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굉장히 시끌시끌했고 삼겹살 타는 연기가 자욱한 식당이었는데도
연기 너머에 존재하는 그를 똑똑히 눈에 담았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한마디로 나는 그 사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대뜸,
“난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어. 설사 김태희 닮은 검사가 결혼하자고 해도.”
“너하고 딱 어울리는 애가 우리 서에 있는데."
(그는 순경이었다.)
'이거 이거 뭐 하자는 거지
?'
그의 매너 없는 이야기에도 나는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소주가 보호막이 되어
'아무려면 어떠하랴 내 앞엔 박해일과 지진희가 앉아 웃고 있는데....'
거지 같은 최면에 빠져있었다.
2시간 동안 그는 한결같이 자기 직장이야기를 했고 한결같이 선을 긋고 있었다.
몸에 퍼진 소주가 휘발되기 시작하자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구나.
"bbang"
총알이 날아와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그를
난
마지막까지 마음에 가득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날마다 커지는 구멍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세상은 참 아름답지 못했다.
어떤 음악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다.
우울한 감정이 되살아나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지 못했던 그때의 시선이
메워졌던 가슴의 딱지를 뜯어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세상이 아름답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그 음악, 참 좋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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